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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닌 나의 마음을 지켜줄 언어가 필요하다, 김혜진 지난 3월 8일은 116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뉴욕에서 1만 5천여 명의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선거권 및 노동 여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유엔에서 이를 공식 기념일로 지정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도부터 법정 기념일로 지정해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성 인권이 이제는 많이 향상됐으니 여성만을 위한 기념일이 꼭 필요하냐고 묻는다. 홍성읍 거리에서 여성의 날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시민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성의 날은요?” 그 순간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바삐 발걸음을 옮기며 스쳐 지나가는 상황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이런 기본적인 질문을 아직도 ..
정치를 옹호함, 장정우 농부에게 겨울은 더없이 소중하다. 지금이야 시설농사를 짓는 이들이 늘어 옛날에 비해 농번기와 농한기의 구분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추수와 김장을 마치고 다음 해 정월대보름이 지나 감자를 심기 전까지, 겨울은 여전히 농부들에게 달콤한 휴식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이 끝나가는 요즘, 겨울다운 겨울을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그 이유는 해가 바뀌고 시시각각 낮이 길어지며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여전히 12월 3일 계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서울에서 벌어지는 혼란은 멀리 떨어진 홍성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홍성과 예산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강승규 의원의 의정보고회가 열렸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대통령과 계엄을 옹호하는 강 의원에게 주민들의 비판이 쏟아질 것으..
새로운 가족의 탄생, 애개육아- 노승희 3월 첫 아이가 태어나는 우리 집의 가족 구성원의 수는 이미 일곱이다. 가족 구성원은 나와 짝꿍 그리고 5마리의 반려견들이다. 중대형견인 풍산개 1마리를 포함해 어쩌다 보니 대가족이 된 우리, 첫 아이를 맞이하며 단순 육아가 아닌 애와 개를 함께 키우는 육아, ‘애개육아’를 준비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반려견과 함께해온 나에게도 애개육아는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다. 애개육아를 준비하면서 신랑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강아지들을 집안 어디까지 들어오게 허용할 것인가? 그에 따라 우리가 강아지 집, 공간 배치 등 환경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출산 후 강아지들 산책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지금은 강아지들이 바깥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 침대에서 함께 자는, 사람과 반려견의 생활영역의 구분..
조심히 걷는 사람, 조희주 긴 바지 입은 걸 후회했다. 온 몸에서 땀이 났다. 무릎과 허벅지, 엉덩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흐늘거리던 가벼운 바지가 땀에 푹 젖어, 걸을 때마다 접히는 부위에 들러 붙었다. 8월 휴가 중이었고,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뜨거운 여름날의 한 가운데였다. 나는 화엄사에 가고 있었다.8월 한 낮에 화엄사까지 걸어 올라가기를 선택한 이는 나뿐인 것 같았다. 작열하는 태양이 달군 길 위에서 만난 건 때 이르게 알에서 나와 벌거벗은 채 죽은 어린 새, 느린 걸음으로 나무를 오르던 매미, 기세 좋게 흐르는 시끄러운 계곡물, 지리산 자락의 울창한 나무 떼, 그리고 이끼였다. 물가 근처의 둥치가 굵은 나무들은 이끼가 만든 옷을 빼입고 있었다. 땀으로 끈적해진 손을 뻗어 이끼를 쓰다듬고, 울타리 너머에 있는 이끼는 눈..
난민이 되자는 말, 《기억·서사》를 읽고- 이예이 농촌에 온 지 10년이나 됐지만, 농사 혹은 농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신비화된 이미지 같은 것들이다. 농사를 짓는 친구들, 이웃들에게서 구체적인 고민과 생활을 듣는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최근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복잡한 인간으로서의 농민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벌써 몇 주 전의 일이다. 우리 마을의 한 회장에서 강승규 국회의원의 의정보고회가 있었다. 내란 시국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호기심이 생겨 참석한 참이었다. 예상을 빗나간 진행이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연설이 지나치게 길어져 어느새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참석자 대부분이 농민이었던 만큼 홍성이 유기농 특구가 되기까지 농민들의 희생을 공치사하는 데 특히 긴 시간을 썼다. 의원의 독백이 이어지던 그때, 참지 못한 한 주민이..
릴레이 기고 20)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14주기에 부쳐, 이철의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오염수를 방류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소금이 품귀현상을 빚고, 전복을 비롯한 어패류와 수산물을 먹어도 되는지 떠들썩하던 일들이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커다란 사건들이 줄을 이은 데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너무 힘겨웠다. 뉴스를 검색해보니 3월 4일 후쿠시마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제주도에 와서 해녀들에게 “일본이 오염수를 무단 방류한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한다.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은 잊힐 것이다. 방류한 지 2년이 되면 해류가 우리의 근해 부근으로 돌아온다니 그때 다시 화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만 거론했지만 더 불길한 위험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날로 확대되는 핵발전소 건설 문제이다.세계는 날로 핵발전소 건설을..
릴레이 기고 19)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release) 아닌 투기(dumping), 임정 임 정 홍성녹색평론읽기모임 시골 마을에서 보낸 나의 어린 시절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었다. 논에 농약을 뿌리지 않아 논과 밭에는 수많은 곤충과 생물이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논고랑에서 미꾸라지와 메기를 잡으며 지냈다. 마을 앞 시냇물도 깨끗하여 시냇물을 그대로 먹을 수 있었고 여름철 저녁에는 물고기를 잡으며 재미있게 놀았다. 두 개의 시냇물이 만나는 뚝방 옆으로 풀이 우거진 큰 벌판이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소를 끌고 가서 풀을 먹게 하고 놀다가 저녁에 소를 끌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큰 시냇물에는 물이 깨끗한 모래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여름엔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40년 지난 지금의 내 고향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시냇물 앞에는 각종 공장이 들어섰고 곳곳마다 대형 소 축사가..
릴레이 기고 18) 우리의 생명 우리가 지키자, 김미희 가족들이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밥상에는 유기농 햅쌀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과 엊그제 지인과 함께 담근 김장김치와 굴 무침, 무와 배추를 넣고 끓인 국, 그리고 겨울에 가장 맛있게 먹는 살짝 구운 김과 자반 고등어구이로 차려진 푸짐한 밥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웃지 못했다. 12월 3일 밤, 이 나라의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서 하루아침에 민주주의가 짓밟혔다. 국민에게 총을 겨눈 대통령, 말이 되지 않는다. 같은 날 우리나라 대법원은 11월 28일 부산환경단체 회원들이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금지’해달라고 제기한 소송을 기각시키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시간이 지날수록 소박한 밥상조차 제대로 먹지 못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참담하다. 김치를 담글 때 젓갈과 소금이 필요..
당원 릴레이 기고 17) 너무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신지인 나는 항상 지리산과 함께해 왔다. 내 태몽도 지리산 산군님이 나오셨고, 내 첫 지리산 종주는 5살 때였다. 고등학생 때는 매주 천왕봉까지 올라 다녔고 성인이 된 후 엔 잠시 가지 못했지만, 결혼 후엔 매년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다.어렸을 때 지리산의 기억은 울창한 숲도 많지만, 몇몇 골짜기와 봉우리들은 맨땅이 보일 정도로 민둥 한 곳들이 많았다. 특히 심했던 곳이 천왕봉 바로 아래인 제석봉이다. 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풀도 잘 자라지 않아 공사장처럼 모래흙만 있었다. 제석봉을 지키고 있는 건 바위와 수십 년 전 죽은 구상나무 고사목뿐이었다. 천왕봉 일출을 위해 해뜨기 전 제석봉을 지날 때면 어린 마음에 섬찟하고 쓸쓸한 기분이 남곤 했다. 제석봉과 다른 민둥 한 자리들이 원래부터 척박한 곳은 아니었다.불과..
내란은 《동물농장》과 무엇이 닮았나, 이동호 넷플릭스 같은 영상 플랫폼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지난 ’12·3 내란’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상황으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매일 새롭게 밝혀지는 그 날의 치밀했던 계획을 듣고, 만약 친위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벌어졌을 일을 떠올리니 안도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체제 세력의 계속되는 거짓과 선동을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시민들을 위해 에서 지금에 딱 맞는 책을 소개해줬다. 1945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책 《동물농장》이다. 유명한 책이라 내용은 알고 있었다. 이젠 이름조차 멀어진 ‘소련’과 실패한 혁명에 대한 메타포라고만 생각했다. 명작이긴 하지만 이젠 나와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책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