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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소소당당] 변화를 위한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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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닌 나의 마음을 지켜줄 언어가 필요하다, 김혜진 지난 3월 8일은 116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뉴욕에서 1만 5천여 명의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선거권 및 노동 여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유엔에서 이를 공식 기념일로 지정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도부터 법정 기념일로 지정해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성 인권이 이제는 많이 향상됐으니 여성만을 위한 기념일이 꼭 필요하냐고 묻는다. 홍성읍 거리에서 여성의 날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시민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성의 날은요?” 그 순간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바삐 발걸음을 옮기며 스쳐 지나가는 상황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이런 기본적인 질문을 아직도 ..
정치를 옹호함, 장정우 농부에게 겨울은 더없이 소중하다. 지금이야 시설농사를 짓는 이들이 늘어 옛날에 비해 농번기와 농한기의 구분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추수와 김장을 마치고 다음 해 정월대보름이 지나 감자를 심기 전까지, 겨울은 여전히 농부들에게 달콤한 휴식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이 끝나가는 요즘, 겨울다운 겨울을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그 이유는 해가 바뀌고 시시각각 낮이 길어지며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여전히 12월 3일 계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서울에서 벌어지는 혼란은 멀리 떨어진 홍성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홍성과 예산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강승규 의원의 의정보고회가 열렸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대통령과 계엄을 옹호하는 강 의원에게 주민들의 비판이 쏟아질 것으..
새로운 가족의 탄생, 애개육아- 노승희 3월 첫 아이가 태어나는 우리 집의 가족 구성원의 수는 이미 일곱이다. 가족 구성원은 나와 짝꿍 그리고 5마리의 반려견들이다. 중대형견인 풍산개 1마리를 포함해 어쩌다 보니 대가족이 된 우리, 첫 아이를 맞이하며 단순 육아가 아닌 애와 개를 함께 키우는 육아, ‘애개육아’를 준비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반려견과 함께해온 나에게도 애개육아는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다. 애개육아를 준비하면서 신랑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강아지들을 집안 어디까지 들어오게 허용할 것인가? 그에 따라 우리가 강아지 집, 공간 배치 등 환경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출산 후 강아지들 산책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지금은 강아지들이 바깥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 침대에서 함께 자는, 사람과 반려견의 생활영역의 구분..
조심히 걷는 사람, 조희주 긴 바지 입은 걸 후회했다. 온 몸에서 땀이 났다. 무릎과 허벅지, 엉덩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흐늘거리던 가벼운 바지가 땀에 푹 젖어, 걸을 때마다 접히는 부위에 들러 붙었다. 8월 휴가 중이었고,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뜨거운 여름날의 한 가운데였다. 나는 화엄사에 가고 있었다.8월 한 낮에 화엄사까지 걸어 올라가기를 선택한 이는 나뿐인 것 같았다. 작열하는 태양이 달군 길 위에서 만난 건 때 이르게 알에서 나와 벌거벗은 채 죽은 어린 새, 느린 걸음으로 나무를 오르던 매미, 기세 좋게 흐르는 시끄러운 계곡물, 지리산 자락의 울창한 나무 떼, 그리고 이끼였다. 물가 근처의 둥치가 굵은 나무들은 이끼가 만든 옷을 빼입고 있었다. 땀으로 끈적해진 손을 뻗어 이끼를 쓰다듬고, 울타리 너머에 있는 이끼는 눈..
난민이 되자는 말, 《기억·서사》를 읽고- 이예이 농촌에 온 지 10년이나 됐지만, 농사 혹은 농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신비화된 이미지 같은 것들이다. 농사를 짓는 친구들, 이웃들에게서 구체적인 고민과 생활을 듣는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최근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복잡한 인간으로서의 농민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벌써 몇 주 전의 일이다. 우리 마을의 한 회장에서 강승규 국회의원의 의정보고회가 있었다. 내란 시국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호기심이 생겨 참석한 참이었다. 예상을 빗나간 진행이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연설이 지나치게 길어져 어느새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참석자 대부분이 농민이었던 만큼 홍성이 유기농 특구가 되기까지 농민들의 희생을 공치사하는 데 특히 긴 시간을 썼다. 의원의 독백이 이어지던 그때, 참지 못한 한 주민이..
내란은 《동물농장》과 무엇이 닮았나, 이동호 넷플릭스 같은 영상 플랫폼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지난 ’12·3 내란’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상황으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매일 새롭게 밝혀지는 그 날의 치밀했던 계획을 듣고, 만약 친위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벌어졌을 일을 떠올리니 안도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체제 세력의 계속되는 거짓과 선동을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시민들을 위해 에서 지금에 딱 맞는 책을 소개해줬다. 1945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책 《동물농장》이다. 유명한 책이라 내용은 알고 있었다. 이젠 이름조차 멀어진 ‘소련’과 실패한 혁명에 대한 메타포라고만 생각했다. 명작이긴 하지만 이젠 나와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책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양아치, 쓰레기를 먹다- 윤찬솔 한 변이 7.5cm인 정육면체 나무 블록. 큐브처럼 27개의 정육면체로 분할되고 이 중 몇 개는 다시 삼각기둥으로 나뉜다. 아동교육으로 유명한 독일의 프리드리히 프뢰벨이 발명한 장난감이다. 아이들은 책상을, 부엌을, 집을 끊임없이 짓고 짓는다. 그리고 무너뜨린다. 표면이 깔끔하게 다듬어져 서로 잘 미끄러지도록 설계된 블록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쉽게 무너진다. 무너져야 다른 모양으로 재조립될 수 있다. 놀이의 마무리는 언제나 정리. 큰 정육면체로 돌아온 블록에는 무엇으로든 될 수 있는 가능성과 에너지가 감돈다.《분해의 철학》의 저자 후지하라 다쓰시는 프뢰벨의 나무블럭에 담긴 교육원리를 ‘분해론’의 기본모델로 삼는다. 전체는 부분으로 구성되고, 부분 하나하나가 유일한 개체이며 그것들이 끊임없이 생성과 분해를..
해일처럼 밀려오는 여성들의 목소리, 김혜진 일 년 동안 나에게 허락된 지면에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고,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갇힌 동물들을 걱정하는 사람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 시각장애인이지만 독립적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 남들과 다르지만 이것 또한 내 삶이라는 식이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혹은 성소수자들을 도울 수 있는 내용에 대한 책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들이다. 말로는 약자이기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지만 실제 인식은 그렇지 못하다. ‘정상성’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게 현실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소수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1박 2일간의 ‘남태령 대첩’ 이야기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유일한 대안이다, 장정우 지난해 12월, ‘대통령 탄핵’이라는 말을 8년 만에 다시 외치게 됐다. 지난 2016년 유아차 부대가 앞장서 촛불로 어두운 세상을 밝혔듯, 2024년에는 2030 여성을 필두로 응원봉이 어두운 밤을 밝혔다. 그런데도 마음속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는 것은 2016년 촛불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고, 채상병 특검법과 양곡법 등 민생 관련 법안들에 번번이 거부권이 행사됐다. 비상계엄이 있었고,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였음에도 자리를 뜨는 국회의원들의 발길을 멈춰 세우지 못해 한없이 무력함을 느낀 날도 있었다.탄핵이라는 엄중한 심판 후에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양곡법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집회신고를 하고 상경하는 농민들을 ..
진짜 ‘다시 만난 세계’가 되려면, 이동호 “다 같은 놈들 아니겠어요?” 지난 토요일 밤, 행색이 서울 집회에 다녀온 사람처럼 보였는지 치킨집 사장님께서 내게 한 말이다. 치킨집 사장님은 이어 말했다. 지금 대통령이 바뀐다 해도 서민 생활은 마찬가지일 테고, 이쪽(여당)이 저쪽(야당)을 물어뜯은 만큼 똑같이 공격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역사책에 나오던 내란을 보리라 생각지 못했다. 까딱했으면 하룻밤 새 독재 국가가 될 뻔했다. ‘12·3 계엄’ 사태는 양비론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중범죄다. 군인들이 국회를 장악하려 한 시도를 온 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북한을 지속적으로 도발해 온 것도 밝혀졌다. 12·3 내란 이후 2차 내란 시도를 파악하기 위해 미군은 정찰기를 남한 상공에 띄워 국내 군부대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무슨 일을 또 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