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한 정부가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국가이익이라는 이름 밑에서 어떻게 교묘한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있는가를 가차 없이 폭로하고 있었다.(6쪽) … 그들로 인해 희생되는 것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으로서 취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형댐의 건설로 인한 인간적 희생은 비용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기록에도 기재되지 않는다. 속담 그대로, ‘가난한 자들에게는 뺏아먹을 만한 것이 많다.’”(11쪽)
20년 전 인도에서 진행된 대규모 댐 건설에 반대하며 쓴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글은 대형댐을 송전탑으로 바꿔 읽는다면, 2026년 홍성의 이야기라고 해도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우리에게 《작은 것들의 신》으로 알려진 아룬다티 로이는 오늘 소개할 책 《9월이여, 오라》에서 권력과 권력 없는 자들의 관계, 풀뿌리 민중의 삶과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에 맞서는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간이 흘렀어도,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현실과 왜곡되고 축소되는 민주주의의 후퇴 속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더욱 가치를 발한다.

5월과 6월은 농민들에게 가장 바쁜 시기이다. 농번기 속에서 또 하나의 폭풍인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6월 3일 지방선거는 현수막 폭탄 외에 무엇을 남겼을까. 무수한 현수막 사이로 홍성군 송전탑 백지화 대책위원회에서 건 현수막이 보인다. 당선인들에게 축하 인사와 함께 그들이 했던 ‘송전선로 건설계획에 반대하고, 현재 진행 중 또는 진행 예정인 입지선정절차 중단을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전에 촉구하며, 송전선로 건설을 막을 대안을 기후에너지환경부·서울시·경기도에 요구한다’는 약속을 이행하라는 내용이 담긴.
홍성군 11개 읍면 이장협의회를 비롯해 각 지역의 여러 주체가 모여 반대하고 있음에도 홍성을 관통할 송전선로 건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새만금#2-신서산 송전선로 건설계획을 위한 입지선정위원회는 막바지를 향하고 있으며, 군산에서 천안으로 그리고 청양에서 평택 고덕으로 가는 두 건의 신규 송전선로 건설을 위한 입지선정 절차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이런 와중에 거의 모든 후보가 송전탑 반대 정책협약을 했음에도, 공보물이나 현수막에서 송전탑과 관련한 내용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많은 주민이 나서서 반대하고 있는 송전탑 문제를 선거판, 나아가 정치판에서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궁금증의 작은 실마리를 나는 최근에 찾을 수 있었다. 대책위에서 지역 행사 날 송전탑 반대 서명을 받으려 했으나 제지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축젯날 송전탑과 같은 이야기를 해서 흥을 깨는 것은 좋지 않다는 논리 그리고 당선인들도 오는 데 뭔가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민의 즐거움을 생각하고, 이후에도 원활한 예산 지원을 위해 당선인의 심기를 살피는 주최 측은 분명 책임감 있고, 프로페셔널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지역의 현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론화하지 않고, 정치인에게 드러내놓고 요구하지 않는다면 주민들은 어디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리가 민감한 사안에 관해 ‘신중’하며, ‘조심스러운’ 정치인을 마주하는 것은 주민 스스로 입을 닫고 모호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는 ‘세계화·자본주의·개발주의란 소수의 사람들은 점점 더 밝게 비추면서,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 속에 잠겨버리게 하는 빛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비유를 넘어 사실적 묘사로 느껴진다. 대도시를 밝히기 위해 농촌에 지어지는 발전소들과 송전탑, 그리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사람이 농촌으로 들어오기는커녕 있던 사람도 지역을 떠나 하나둘 불이 꺼져가는 동네는 실제로 오늘날의 모습이다. 이 책의 끝에 나오는 “꽉 죄는 속박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에 저항하는 겁니다. 그것을 차지하거나 소유하는 게 아닙니다.”(185쪽)라는 작가의 말은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듯하다.
송전탑이 우리에게 보장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역 발전인가, 지역의 원활한 전기공급인가, 아니면 막대한 물과 전기를 먹으며 큰돈을 벌어다 줄 반도체 공장인가. 어느 것도 아니다. 우리의 논과 밭, 뒷산을 내어주고 삼성과 SK의 주식을 사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종종 평온한 일상, 익숙한 풍경이 망가지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곤 한다. 송전탑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내 삶의 터전이 망가지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불행해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https://www.hj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050
송전탑, 우리를 어둠에 잠기게 할 빛 - 홍주일보
“그것은 한 정부가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국가이익이라는 이름 밑에서 어떻게 교묘한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있는가를 가차 없이 폭로하고 있었다.(6쪽) …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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