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은 ‘쉽게 쓰여진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이 한마디는 비단 시인만이 아닌 모든 문인에게 해당하는 말인 듯싶다. 소개할 책의 저자 또한, 윤동주 시인 못지않게 고난 속에서 붓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저자의 집념과 헌신에 현대 역사학자들은 적잖은 빚을 지고 있다고 나는 본다. 그 저자란 바로 ‘사마천(司馬遷)’, 그리고 책은 바로 역사상 최초의 기전체로 남아있는 불후의 역사서 《사기(史記)》이다. 사기는 삼황오제(三皇五帝) 때부터 시작해, 전한(前漢) 시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저자인 사마천에 관한 이야기가 필수다. 사마천은 ‘사마담(司馬談)’을 아버지로 두었는데, 사마담은 태사령(太史令, 학문을 연구하던 관직) 자리에 있었다. 사마담은 죽기 전에 아들인 사마천에게 “천하의 역사를 기록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런 뜬구름 잡는 듯한 막연한 유언이 따로 있을까? 그러나 사마천은 마치 이를 예상이라도 했는지, 젊은 시절부터 중원 땅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탐구 활동을 벌여왔다. 그 탐구 활동과 기록을 모아서 집필하던 도중, 사마천에게도 고난의 시간이 찾아온다.

당시 중국은 한(漢)나라 왕조의 ‘무제(武帝)’가 다스리던 때이다. 무제는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동시에 흉노와 끝없는 전쟁을 벌인 군주였다. 그런데 흉노와 전쟁 도중에 한나라 장군인 ‘이릉(李陵)’이 흉노에게 투항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무제는 진노했지만, 사마천은 이릉을 변호하며 나섰다. 이에 무제는 사마천을 옥에 가두었다. 옥에서 살아서 나가려면 50만 전을 내야만 했다. 그런 거금이 없었던 사마천에게 선택지는 오직 두 가지였다. 사형 또는 궁형(宮刑). 궁형이란, 바로 남성의 성기를 잘라내는 형벌로 치사율이 높고 치욕까지 겪게 되는 형벌 중 하나였다. 사마천은 갈등한다. 그냥 사형을 당하자니 아버지의 유언과 지금까지 쌓아놓은 기록을 포기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궁형의 치욕을 과연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 끝에 자신의 대업을 더 중시한 사마천은 궁형을 선택한다.
그렇게 치욕을 감내한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에는 역사상 최고의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해낸다. 사기는 제왕들의 기록이 담긴 ‘본기(本紀)’, 연표에 따라 도표에 기록한 ‘표(表)’, 당시의 문화상을 기록한 ‘서(書)’, 제후들의 기록인 ‘세가(世家)’, 그리고 그 외에 이름을 떨친 이들의 기록인 ‘열전(列傳)’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중 가장 많이 읽히는 게 바로 열전이다. 방대한 규모만큼, 사기 문장 곳곳에는 사마천 열정과 집념이 배어있다. 필자도 사기를 해마다 정독한 지 10년이 다 돼간다. 그래서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사마천의 방대한 자료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사마천도 사람이다 보니, 사기에도 기록상 오류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오류만 가지고 사마천의 노고를 깎아내리는 것 또한 오류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사마천과 사기를 여전히 옹호한다.
사기는 사서로서 완성도도 대단한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사마천 특유의 필체는 역사적 사실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초한지(楚漢志)’의 주인공으로 잘 알고 있는 ‘항우(項羽)’. 그 항우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항우 본기’는 한 편의 소설로 봐도 될 정도이다. 항우 본기에서 보이는 사마천의 필체는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를 생동감 있게 느껴주게 한다. 마찬가지로 ‘진시황(秦始皇) 본기’에서는 철인임과 동시에 잔혹한 지배자였던 진시황의 서슬 퍼런 냉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오자서(伍子胥) 열전’에서 복수에 일생을 바친 오자서의 비참한 일생에 비장함 끔찍함, 그리고 눈시울을 붉히는 아련함까지 느낀다. 이렇게 사기를 수놓는 사마천의 필체는 읽을 때마다 독자의 감정을 뒤흔든다.
사기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바로 사마천이 ‘현실’을 중시해서 저술했다는 점이다. 제왕들의 기록인 ‘본기’에 사실상 패배자이자 제왕이 되지 못한 ‘항우’, 그리고 여인이었던 ‘여태후(呂太后)(한고제(漢古帝) ‘유방(劉邦)’의 황후)’를 넣은 점에서 사마천이 명분뿐만 아닌 실질 또한 중시해서 기록했음을 잘 알 수 있다. 제후들의 기록인 ‘세가’에, 제후도 제왕도 아니었던 ‘공자(孔子)’의 이야기를 기록한 부분에서도 사마천의 그러한 자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기록 곳곳의 엄벌주의에 대한 비판을 함께 넣는 모습도 보인다.
사기에 대한 지나친 찬양 같아 쓰면서도 살짝 멋쩍다. 그렇지만, 마지막은 대문호 중 한 명이었던 ‘루쉰(魯迅)’의 사기에 대한 평을 쓰면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역사가의 빼어난 노래(史家之絶唱)요, 운율 없는 ‘이소’(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명문)(無韻之離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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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어디까지 읽어봤습니까? - 홍주일보
윤동주 시인은 ‘쉽게 쓰여진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이 한마디는 비단 시인만이 아닌 모든 문인에게 해당하는 말인 듯싶다.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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