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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당당] 변화를위한서평단 (2023~매주 서평 홍주일보 연재)

이 시간이 이어질 수 있을까? 윤찬솔 2026.06.11

내 할머니는 올해로 아흔 둘, 1935년생이다. 내가 올해 서른이니까 나와는 62년의 시차가 있다. 내가 풍족한 시기에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으면서도 농사지을 필요도 없이 대학 갈 공부만 할 수 있었다면, 할머니의 시간은 식민지, 전쟁, 가난, 끝없는 집안일과 바깥일, 자식 건사,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이농에 걸쳐 있다. 자연스레 몸에 밴 억척은 이제 지혜가 아니라 지겨운 것이 되었다. 할머니가 몸으로 익혀온 지혜는 어느 대학을 가는 게 유리한지, 어느 주식 종목이 유망한지 등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고 몽땅 쟁여두는 건 구차한 짓이다. 버리고 새로 사는 게 훨씬 편하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는 할머니와 대화를 오래 한 적이 별로 없다. 명절이나 생신 때 만나더라도 혼자 밥은 잘 챙겨 먹냐는, 반찬 사 먹을 돈 걱정하지 말라는(남자인 내가 밑반찬을 직접 만든다는 개념이 할머니에게는 없다) 으레 빠지지 않는 안부인사에, 퉁명스레 걱정하지 마시라고 소리치고 나면 대화할 거리가 별로 없다. 사근사근하지 못한 성격 탓도 있지만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한 탓이다.

부모님과도 비슷하다. 좋았든 싫었든 그네들은 경제가 팽창하는 시기에 젊은 날을 보냈고, 거기에서 비롯한 여러 생활양식과 이념들을 내면화했다. 부모님도 할머니와 대화하기 어렵듯, 나도 부모님과 대화하기 어렵다. 개인적 친밀감 이전의 문제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북하우스/ 2020년 12월/ 17,000원

 

 

내 세대는 어떤 세대일까? 부모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 작은 실패에도 금방 죽을 것처럼 틀어박히는 은둔형 외톨이.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 문턱. 비정규직. 근로소득보단 불로소득. 개인이 무엇보다 우선.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부터 지구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 이 말보다 강력한 것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MZ세대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모든 세대에게 요청되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인식, 그러니까 지금의 자본주의에 기초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를 지속할 경우 파국이 올 것이라는 인식이 맞는 것이라면 말이다. 정말 맞다면 이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30년, 60년 세대차가 어쩌고저쩌고 따지는 것도 사치스러울 정도다.

‘지구온난화’, ‘해수 산성화’, ‘빙하 해빙’, ‘역대급 가뭄’, ‘배출가스 증가’, ‘기후위기’.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었을 경고들. 어린 시절부터 지금의 생활양식을 지속한다면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를 들어온 세대에게, 왜 애를 낳지 않느냐고 젊은 놈이 패기가 없냐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은 기후학자들이 여러 개념과 통계를 나열하며 경고한 것을, 우리가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바꿔서 이야기해준다. 기후변화는 블랙홀과 같이 너무나 거대한 문제라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거기에다 지금의 구조에서 이익을 얻는 자들의 각종 선전이 더해진다.

우리는 석유에 의존한다. ‘인간 몸의 90%는 석유이다.’ 그렇게 석유를 연소시켜 에너지를 얻고, 남은 열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인다. 그러나 이러한 불은 자동차 후드 안의 엔진처럼 매끈한 마감재 너머로 가려져 있다. 화산의 분화는 누구나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불이다. 인간의 불과 화산의 불, 둘 중 어느 게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할까?

압도적으로 인간이다. 지구의 모든 화산이 해마다 약 2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데 비해 인류가 해마다 방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약 350억 톤이다. 그러니 사실 우리는 매일같이 밤이나 낮이나 화산을 분화하며 세상에 불을 지르고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도 연기도 보지 않는다.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높아진다. 현재 해수면의 높이에 맞게 세워진 많은 도시가 물에 잠길 것이다. 수천만 명의 보금자리가 사라진다. 이때 수천만 명은 많다는 것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실제 사람 하나하나다. 그들이 갈 곳이 있을까? 매년 자동차는 1억 대 정도가 ‘새로’ 만들어진다. 길게 쓰면 20년이고 취미 삼아 바꾸는 사람들도 많다. 여러 가전제품도 20년을 쓰면 오래 썼다고 하는데, 20년 정도의 시야를 갖고 장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차대전에서 영국은 GDP의 절반을 전쟁에 썼다고 한다. 기후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새로운 에너지 체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돈은 전세계 GDP의 2~2.5%라고 한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는다고?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임기 내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한다고? 전쟁은 일회용품처럼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를 불러일으키는 좋은 사업인가?

기후학자들의 예측이 맞다면 지금부터라도 잘 축소하던가, 자멸하던가 둘 중 하나다. 마그나손은 끊임없이 희망을 말한다. 맨해튼 프로젝트로 인류 최대의 무기를 만들어냈듯이, 인류가 만약 확고하게 힘을 합친다면 지속가능한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선결 조건은 하나, 지금의 상황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맞느냐는 것.

시간은 이어진다. 만약 내가 이 빌어먹을 상황에서도 동물로서의 본능에 충실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는다면, 할아버지가 된다. 지금 나의 할머니와 나이차가 똑같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2059년생. 그들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는 2088년, 혹시나 아흔둘까지 살아있다면 2150년이다. 할머니가 태어난 1935년부터 2150년까지, 215년은 직접 피부로 맞닿은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와 이야기가 직접 전달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이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