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심했다. 홍동면에서 비건 식당을 개업하기로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꼭 그렇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 ‘그렇게’라는 건 아마도, 대중적으로 익숙하지 않을 텐데 꼭 그렇게 무리해야 하냐는 걱정일 테다. 또는 꼭 그렇게 비건을 내세워야 하냐는 거부감으로도 들렸다. 나는 무리하는 것도, 억지로 강요하고 내세우고 캠페인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식당을 비건으로 운영하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홍동면이기 때문이다. 홍동면은 유기농업과 생협 운동의 유구한 역사가 유유히, 지금도 내가 사는 이곳에 흐르고 있음을 매일 같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풀무농업고등학교와 대안대학 과정인 풀무 전공부가 있어서 생태적 삶, 농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곳이다. 때문에 마을 문화는 정체되지 않고, 언제나 생동할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삶의 모습과 사상에 열려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비거니즘이다. 비거니즘은 동물 착취를 반대하는 철학인데, 식사를 채식으로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전반에서 이를 행하고 지향하는 것을 뜻한다. 홍동면에서 진행되는 각양각색의 모임, 행사 자리에서 음식 준비는 채식을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채식 인구가 많은 편이라 이들을 배제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런 우리 마을 문화를 이어가고 싶어서 나는 비건 식당을 준비한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어느 정도는 생활 속에서 비건 식사를 지향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채식만 하지 않는다. 종종 고기를 먹게 될 때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강을 위해서 주로 채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건강이 아닌 다른 두 가지 이유로 채식을 우리가 꼭 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나는 기후위기이다. 아시다시피,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기후위기 대응 방법은 바로 고기를 적게 먹는 것이다. 고기를 만들기 위해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온실가스가 발생하는데 이 규모가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것보다 크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고기를 적게 먹고자 해도 모든 식당에서 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을 판다. 홍동면에도 서너 곳의 음식점에서 모두 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한 음식들을 판매한다. 나는 ‘비건’이 좋아요, ‘비건’이 맞아요, ‘비건’해야 합니다! 이렇게 외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식당 여섯 곳 중 한 곳이라도 비건인 거,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식당이라도, 다양하게 마음껏, 채식을 접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으면 뭐 그것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먹는 ‘고기’에 대한 것이다. ‘고기’이기 이전에 닭, 소, 돼지였던 그들 말이다. 부모형제 없이 비좁고 냉혹한 환경에서 운동도 못하고 날마다 같은 음식만 먹으면서 정상적으로 성장할 ‘아이’는 없을 것이다. 그들도 마찬가지다. 과연 그 ‘고기’가 우리 몸에 좋을까? 인류 역사상 유래 없을 정도로 대-규모로 그들을 가둬놓고 사육하는 우리는 과연 그 어떤 과보도 어떤 피해도 입지 않고 무사할 수 있을까?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이 ‘고기’가 되기 위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는 ‘동물의 살점으로서의 고기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전국의 농장을 찾아 직접 일하며 이야기를 기록했다. 책은 닭고기의 경우(산란계 농장, 부화장, 육계 농장), 돼지고기의 경우(종돈장, 자돈 농장, 비육 농장), 개고기의 경우(개농장),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잔혹하겠지, 끔찍하겠지, 그냥 뻔하게도 다 아는 내용일거라 생각하고 책을 펼쳤지만 이어지는 장면을 믿을 수 없어 나는 눈을 꿈뻑이고 또한 입을 틀어막았다. 어떤 농장이든지 들어가서 1초 만에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렇게 많은 농장을 다니며 발로 쓴 이야기는 너무나 처절하다. 그들의 모습은 그저 몇 부분 발췌해 옮기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겠다. 우리가 좋아하는 치킨을 생각하며, 닭고기에 대해 쓴 부분을 소개한다.
‘케이지는 전자레인지만 한 크기였다. 이 안에 닭 네 마리가 들어간다. 농구공만 한 닭을 집어넣는 게 가능한 건 닭은 구기고 찌그러뜨려도 터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몸통은 이리저리 얽혀 있어 개별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웠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밖으로 빼낸 머리뿐이었다. 몸통 하나에 머리만 서너 개 달린 돌연변이 같았다.’
‘내가 그곳에서 본 동물을 닭이라고 부르려면 과감한 상상력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동물에겐 깃털이란 게 거의 달려있지 않았다. 너무 좁아 한 마리는 늘상 밑에 깔린다. 닭들이 한 시간이라도 편안히 잘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침낭 하나에 네 사람이 들어갔는데 모두 손과 발에 깨진 유리 조각을 붙이고 있다 생각해 보라. 어느 순간부터 닭들은 서로가 서로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온몸의 털이 빼진 것도 피부가 시뻘겋게 부어 있는 것도 전부 납득이 됐다. 책으로 읽었다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내 눈앞에 있었고 너무나도 역겨워 보였기 때문에 혐오하는 것 말고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수평아리들을 갈색 마대자루에 담고 있었다. 한 사람이 자루를 벌리면 다른 사람이 병아리를 붓고 쓰레기를 담듯 발로 꾹꾹 눌러 자루 꼭대기까지 채워 넣었다. 청소부들이 자루에 낙엽을 담는 모습과 같았다. 부화장의 낙엽들은 몸부림치고 소리를 지르고 피를 흘린다는 점만 빼면. 자루에서는 끈적거리는 갈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모든 자루에서 삐약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소소당당] 변화를위한서평단 (2023~매주 서평 홍주일보 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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