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도 더 전에 나온 책(1971년). 우루과이의 언론인이자 저술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썼다. 한국에서는 1988년 범우사에서 《수탈된 대지》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스페인어 원제는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 2025년 알렙 출판사에서 원제목을 그대로 살려 다시 출간했다. 영역판을 대본으로 했던 기존과 다른, 스페인어 직역본이다.
어릴 적 책장에 꽂혀있던 위인전 시리즈에서 콜럼버스를 처음 읽었다.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신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라니. 모험심과 험난함을 극복하는 용기와 의지, 그리고 끝내 이뤄낸 업적. 위인에 들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원주민들에게 아메리카는 ‘신대륙’이 아니다. 조상 대대로 살고 있던 땅이었을 뿐이다. 1492년 콜럼버스의 도래는 신과 문명의 이름을 뒤집어쓴 침략과 약탈의 시작이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그 땅이 자기들의 소유라고 허락한 적 없었으나, 그들은 그렇게 했다. 신이 주셨다고. 십자군 전쟁과 같이 ‘옮음’을 전파하는 길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갈레아노는 콜럼버스를 ‘위인’이라 쓰지 않고 ‘약탈자’라고 쓴다. 시종일관 착취당하는 자의 입장에서 ‘신대륙’ 발견 이후 500년을 ‘흡혈’이었다고, 그 흡혈의 구조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쓴다. 그는 중립적인 언어 뒤로 숨지 않는다. 이를테면 ‘노동 유연화’라 하지 않고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방소멸’에 대해 ‘식민지배의 결과’라고 쓰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는 한마디로 땅이 풍요로웠기 때문에 인간이 빈곤해진 역설의 역사이다. 1503년부터 1660년까지 당시 유럽 비축 총량의 3배에 달하는 금과 은이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약탈된 귀금속은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위해 필요한 본원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 볼리비아의 가난한 도시 포토시는 당시 은 광산으로 인해 말발굽조차 은으로 돼있을 정도로 화려했지만, 지금은 폐광에 다름 아니다.
금과 은 다음은 ‘하얀 황금’이라 불리는 설탕이었다. 비옥한 토양과 열대의 기후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불러왔고, 그것으로 축적된 자본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을 가능하게 했다. 설탕제재소, 직물공장이 생겨나며 유럽에서 공업도시가 부흥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동안, 광산과 대농장에서 사람이 죽어갔다. 총계 7000만에서 9000만에 달했던 아즈텍·잉카·마야 문명의 사람들은 150년 후 350만으로 감소했다. 16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수백만에 달한다고 하는데, 정확한 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메리카의 자원과 노동, 아프리카의 노예, 유럽의 공장제품, 이 셋이 결합된 삼각무역은 유럽의 자본주의를 더 높은 단계로 이끌었다. 무역이 아닌 흡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이 물러간 다음 차례는 미국이었다. 보호무역을 통해 세계최대의 공업국으로 성장한 미국은 200년 전 영국이 그랬듯 자유무역의 전도사가 됐다. 사탕수수, 담배, 면화, 커피, 카카오, 바나나, 석유, 고무, 주석, 보크사이트…… 다국적 기업과 자유무역의 외피를 두른 제국주의는 덜 야만적으로 보였다. 실은 착취의 구조를 영속화하는 더한 야만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역사 체험은 개발로 가장된 불구화와 분열이 계속 이어지는 체험’이 될 수밖에 없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세계의 경찰, 만리장성, 피라미드는 어쩌면 자랑스러워할 만한 게 아니다. 거대한 규모엔 희생이 내재한다. 그 밑에 깔린 목숨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부끄럽고 슬픈 일이다. 게으르고 무능해서 가난해진 거라고? 제발 좀 살던 대로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까? 왜 알아서 ‘진보’하지 못했느냐고?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매번 이기는 게임만 하면 즐거운가?
선진복지국가의 중산층에서 태어난 사람을 생각해보자. 가정의 지지 속에 자아실현을 위해 부지런히 시간을 쌓는다. 충분히 준비가 된 채 사회로 나간다. 괜찮은 일자리와 꽤 높은 임금이다. 매너가 좋고 매끈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불평등과 기후위기와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도 있다. 그런 주제로 토론을 할 따뜻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이 사람에게 철 지난 500년 수탈사에 대한 복수를 말할 수 있을까? 네가 딛고 선 조건이 어디에서 시작된 건 줄 아느냐고, 네가 받는 높은 임금과 싼 소비자 가격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아느냐고 비판할 수 있을까?
그래, 착취당하는 자의 입장에서 역사의 진실은 그편이 맞다고 하자. 지속가능성을 가치의 기준으로 둔다면 경제의 규모가 클수록 나쁘다. 성장할수록 나쁘다. 그렇다고 갑자기 내 생활을 송두리째 바꾸라고?
각자의 방에서 조금씩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이 한올 한올 모여 지독하게 얽히고설킨 불평등의 견고한 매듭을 만든다. 제국과 식민은 위계를 달리해 어디서나 반복된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왜 지역으로 가지 않을까? 왜 농사를 짓지 않을까? 거기에 어떤 악독한 마음은 없다. 자신이 자라면서 쌓아온 기반과 인간관계, 그리고 다양한 기회가 서울에 있기에 거기 있고 싶은 것뿐이다. 책상 먼지를 매끈한 물티슈로 닦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같다. 이게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로 버려질지는 인식 밖이다. 그래서 더 견고하다.
빚졌다는, 빚지고 있다는 마음 정도는 갖고 살자. 민중의 입장에서 살진 못하더라도 모순을 직시하면서는 살자. 혹시 아는가. 우리가 이런 책을 읽으며 땅으로 인식의 뿌리를 깊이 내려간다면 그 내용이 살에 스며들어 작지만 정직한 싹을 틔울 수 있을지. 꽃을 피우고 다음을 위한 씨앗을 맺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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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빚진 역사 - 홍주일보
50년도 더 전에 나온 책(1971년). 우루과이의 언론인이자 저술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썼다. 한국에서는 1988년 범우사에서 《수탈된 대지》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스페인어 원제는 《라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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