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도 젊은데 왜 이런 일을 해.” 주방에서 같이 일하는 분이 어느 날 내게 ‘비전’있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했다. 사람들 뱃속으로 사라지는 밥, 백날 차려봤자 무슨 미래가 있겠냐고. 예능 프로 <흑백요리사> 열풍에서 보듯 셰프들 특히 남성 셰프들의 인기는 그 어느 때보다 하늘을 찌른다. 똑같이 뱃속으로 꺼지는 음식을 만들어도 그들이 하는 일은 전문성을 겸비한 예술이지만, ‘이모’, 주부, 여성 노인이 하면 ‘이런 일’, ‘그런 일’이 된다.
여성들의 노동을 포함해 육체 노동은 쉽게 멸시 받는다. 윤석열은 대통령 후보 당시 한 대학의 간담회에서 육체 노동을 ‘손발 노동’이라는 비유로 멸칭한 적이 있다.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이라고 발언해 육체 노동자, 아프리카 국가들을 비하해 물의를 빚었다. 대통령 후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공분을 샀지만, 노동에 대한 계층의식, 편견 그리고 혐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서다.
그런 표현 중 하나는 ‘막장’. 이라영의 《쇳돌》은 광산의 누락된 역사를 채워 나가는 한편,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깨부수는 책이다. “광업계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을 일반인들이 볼 때 ‘막바지 인생’, ‘인생 막장에 계신다’, ‘불쌍하다’”고 여기거나 “아직도 우리나라에 광산이 있어?”라는 질문까지. ‘노동 위계’는 특정 직업군들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한 몰이해를 낳는다.
우리 문명의 토대는 무엇일까. 경제, 기술, 과학, 정치, 예술, 문화, 법률, 종교…. 이런 무형의 유산을 먼저 떠올렸다면 이 책을 꼭 읽기를 권한다. 이라영은 조지 오웰을 인용한다. “우리 문명의 기반은 (…) 석탄이다.” 철, 유리 그리고 시멘트나 비료, 제약 등에 쓰이는 석회석, 휴대폰과 각종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 코발트 등의 광물들까지. 이 첨단 사회를 떠받들고 있는 것은 스마트한 가상의 무언가가 아니라 결국은 물질인 ‘돌’이다. 오웰은 덧붙인다. “서구 세계의 신진대사에서 석탄 광부보다 중요한 존재는 땅을 일구는 농부밖에 없다.”

이라영은 보도자료, 향토사, 논문 등을 비롯해 시, 영화, 소설 같은 문학 작품 속 광산과 광산 노동자들이 그려지고 재현되는 방식을 분석한다. 동시에 이러한 ‘공인된 자료’에 기록되지 못한 노동자들, 지역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았다. 아버지와 고모, 삼촌, 할머니와 주변 이웃들이 일했던 양양광업소부터 속초, 강릉, 정동진, 동해, 태백, 보령, 정선, 도계까지. 저자는 폐광되거나 폐광될 위기의 그리고 현재 가행중인 광산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광산의 흥망성쇠와 함께 지역의 변천을 고스란히 경험한 지역민들 그리고 광부의 아내들, 폐광 이후 이산했지만 ‘쇳돌’이라는 이름으로, ‘광부댁’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모이고 연대하는 이전의 광부들까지. 그가 ‘듣는 것의 윤리’를 강조하며 “개인에게 머문 기억, 허풍, 전해져오는 말들, 소문, 꿈”까지도 집요하게 교차 검증하며 기록해나가는 까닭은 “서울 중심, 중산층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는 동안 어떤 목소리들은 밀려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라지지만, 동시에 사라지지 않는다. 이 말은, 직업이 사라지는 것일 뿐, 폐광 이후에도 광부의 생애는 지속된다는 의미이고, 기술이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해도 문명의 신진대사를 움직일 물리적 토대는 언제나 돌과 땅에, 광산과 논밭, 1차 산업 노동자들의 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명이 지속되는 동안 돌을 채굴하는 사람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으로, 생산비와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밖‘으로, 이주노동자들과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들의 손으로 점차 밀려날 뿐이다. 그렇게 갱도의 끝, “또 다른 막장이 만들어진다.”
직업이 사라지는 것 자체보다 “그 직업 안의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게 문제”다. 광부들이 산업 역군에서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 된 것처럼, 쓸모를 다한 뒤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는 태도는 노동자라는 이름 뒤에 다층적인 생애가 있다는 사실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를 서럽거나 비참하게만 여기거나 “고통 속에서 힘겨운 노동을 버티면서 삶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교훈적”인 평면적 존재로 그리는 태도 역시 “윤리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제”다. 이라영은 이전 작에서 “나는 노동해방은 가능하지 않으며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썼다. 노동은 “인간 사회의 본질”이며 “숭배의 대상도 패배의 징표도 아닌, 살아 있는 자의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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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 홍주일보
“나이도 젊은데 왜 이런 일을 해.” 주방에서 같이 일하는 분이 어느 날 내게 ‘비전’있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했다. 사람들 뱃속으로 사라지는 밥, 백날 차려봤자 무슨 미래가 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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