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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당당] 변화를위한서평단 (2023~매주 서평 홍주일보 연재)

강 건너 불구경, 이예이 2026.05.28

반도체 산단-송전선로 건설을 키워드로 온라인 검색을 해보다가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유능한 인재들이 용인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에 반도체 산단 이전은 비현실적인 주장”이라는 그 기사는 논리가 엉망이라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누군가를 소외시키면서도 그런 줄 모르기로 작정한 나쁜 글이었다.

타인의 고통은 강 건너의 불, 그 이상이 되기는 어렵다. 지역에 살며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들과 어떤 언론들에서 그려지는 반도체 산단-송전선로 문제는 커다란 강을 사이에 둔 전혀 다른 사안들처럼 느껴질 정도다. 기자 김인정은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피부에 감싸여 있기에 나의 피부 바깥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기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책은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해 온 저자가 타자, 고통 그리고 이야기라는 화두로 지난 경험을 돌아본 취재의 뒷이야기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촬영돼 떠돌던 영상물들에서 느낀 윤리적 괴로움부터 세월호 참사 직후 부모들의 오열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했던 일, 코로나 전염병 확산 이후 동양인 혐오가 만연했던 미국 차이나타운에서 찍힌 폭행 장면 영상을 자극적인 수위에도 불구하고 기사에 싣기까지 지난했던 고민 등 뉴스를 만들고 배포하는 언론인으로서 저자가 겪는 혼란과 방황을 여과 없이 적어 나간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김인정/ 웨일북/ 2023년 10월/ 17,500원

 

 

김인정은 “소통이 불가능한 지점”은 있다고 인정한다. ‘마약 거리’라는 악명이 붙은 샌프란시스코 텐더로인 거리를 취재하며 저자는 모종의 거리감을 느낀다. “그들의 살갗과 나의 살갗의 색이 비슷하지 않다는 감각”에서 “모국의 공동체 안에서는 (…) 느낄 수 있었던 직관적인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자신 앞에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의 고통은 ‘피부색’이라는 장벽에 막혀 전달되지 못한다. “인종과 언어, 젠더, 계급” 그리고 사는 지역 등 각자가 속한 “이해집단으로서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은 수십억 갈래일 것이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복잡한 사회에서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의 입장과 고통을 결코 알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자기주장이 난무한 소음 속에서 각자도생하는 것만이 답일까. 이 책에는 저자가 반복적으로 회귀하는 독특한 정서가 있다. ‘껄끄러움’이 그것인데, 자신이 놓친 뭔가가 있다는, 맥락을 잘못 짚었다는 찜찜함 혹은 씁쓸함이 몰려오는 순간들이다. 그때야 저자는 장벽을 넘어 타자의 사정에 닿을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전 재산을 기부한 가난한 한 노인을 취재했을 때도 예의 그 찝찝함이 남았고, 덕분에 자신이 “약자를 희망의 증거로 소비”했다는 사실을,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타인을 도왔다는 식”으로 노인이 평생에 걸쳐 실천한 선행의 본질을 흐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이야기는 자신의 확신이 무너지며 의심하게 되는 순간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선물 같은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그 불안한 아득함을 그저 인정하고, 타인에게서 온 이야기를 세계에 펼칠 수 있는 자격과 적합성에 대해 고민하고 반추하는 게 더 정직한 저널리즘 아닐까”하는 저자의 고민처럼 ‘강 건너’에는 ‘이쪽’의 현실에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단순하고 투박한 태도는 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실천으로도 읽힌다.

경향신문 김지원 기자는 ‘강 건너 불구경’의 다른 해석을 제시한 뉴스레터를 발행한 적이 있다. “너와 나 사이엔 강이 있고, 나는 너의 세계를 모른다. 그러므로 ‘구경’하고 배우겠다”는,  “나는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진정 알고 싶어”하는 태도는 마치 강 건너에 불이 나지 않은 것처럼 보지 않기로 작정한 것보다 낫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지역민들이 송전선로 건설을 반대하며 주장하고 호소하는 말들은 흐릿하게 듣기 쉽다. ‘국책사업’이란 명분 아래 지역민의 생존권을 빼앗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탓에 지겹고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다. 껄끄러움이 남는 순간을 흘려보내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타인의 이야기에 닿을 수 있다면 지역은 식민지가 아니라는 말에, ‘님비’로 번역되곤 하는 누군가의 건강과 재산권, 애착 어린 땅과 풍경을 지키고 싶어 하는 조망권에 관한 흔하디흔한 그 ‘지역 이기주의’적인 말들에 전혀 다른 색채가 떠오르며 낯설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단순하고 투박한 인정 그다음, 공감과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어쩌면 ‘공감’은 구경하고 있던 강 건너의 세계와 안전한 줄 믿었던 ‘이쪽’의 세계가 실은 같은 토대 아래 활활 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도체 산단-송전선로 건설은 우리가 요청한 적 없었던 ‘AI 시대’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 원전 10기에 맞먹는 전력량이 필요한 반도체 산단과 데이터 센터는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불을 지를 것이다. 당신은 어디쯤에 서서 이 불을 구경하고 있는가? 김인정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으며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https://www.hj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37800

 

강 건너 불구경 - 홍주일보

반도체 산단-송전선로 건설을 키워드로 온라인 검색을 해보다가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유능한 인재들이 용인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에 반도체 산단 이전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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