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홍성여성농업인지원센터’ 주관으로 상영한 영화 《남태령》을 봤다. 남태령은 과거 한양에서 삼남지역으로 내려갈 때 주로 쓰이던 교통로 중간에 있는, 서울 사당과 과천 경계에 있는 큰 고개다. 2024년 12월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식량주권, 농민의 기본 권리 보장 등을 헌법에 포함하는 ‘농민헌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전봉준투쟁단을 조직했다. 12월 21일 동짓날, 전남과 경남에서 출발해 서울을 향하던 전봉준투쟁단을 경찰이 남태령에서 막았다. 영화 《남태령》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당시 남태령에서 밤샘 대치를 하며 발생한 시위와 참가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불법계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경찰이 농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할 것을 걱정한 시민들이 남태령에 모였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의해 모인 것이 아니라, SNS를 통해 소식을 들은 개인들이 하나둘 모였다. 이들은 차벽 앞에서 밤을 지새우며 서로가 겪은 차별과 외로움을, 그래서 바라는 세상을 함께 나누었다. 농민과 젊은 여성, 그자리에 있던 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길고 추운 밤이었다. 유튜브로 현장을 보던 시민 중 누군가 핫팩과 닭죽을 보내왔다. 현장에 가지 못하는 이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난방버스도 보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밤이었다. 28시간 대치 끝에 경찰 차벽이 열렸다. 전봉준 동학농민군이 입성하지 못한 서울 문이 농민들에게 드디어 열렸다. 영화는 박진감 있게, 현장에 없었던 이들도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게 잘 만들어졌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온 뒤,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경찰 차벽은 열렸지만, 그날 남태령에서 농민과 청년들이 외친 세상은 과연 열렸을까.

지난주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와 피지컬 AI, 데이터 센터에 대한 초대형 투자를 알리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지난 겨울 발표한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를 확대 개편한 프로젝트다. 사상 초유의 금액이 투자될 것이라 했다. 프로젝트가 차질 없도록 진행되도록 각부처와 기업이 통합팀을 꾸려 상황을 점검하고 행정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다. 세상은 몇 천조 단위의 투자와 장밋빛 미래 뉴스로 가득하다. 홍성을 지나 용인으로 가는 고압 송전선로 계획이 재검토되길 바랐으나, 설상가상이었다. 고압 송전선로 싸움은 더 크고 길어질 것 같다.
책 《마을과 세계,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삶과 시대》는 사회학자 마리아 미즈의 자서전이다. 마리아 미즈는 1931년에 태어나 202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여성과 세계화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한, 학문과 행동을 결합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운동가이자 학자였다. 독일의 농촌에서 유년을 보낸 그녀는 인도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독일로 돌아와 학업을 이어갔다. 책 제목처럼 마을과 세계를 오가며 사회의 가부장적 관계에 대한 관점을 자본주의의 북반구와 남반구, 인간과 자연으로 넓혀갔다. 차별, 착취, 폭력에 맞서 싸웠던 그녀는 자신의 사상을 ‘좋은 삶’과 ‘자급’이라는 대안으로 발전해간다. 반도체로 온 세상이 포식돼 가는 것을 보며 마리아 미즈를 꺼내든 이유다.
‘남태령’ 이후,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도자는 바뀌었으나, 세상은 ‘원래대로’ 개발과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반도체와 AI를 미래 먹거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진짜 먹거리를 만드는 논, 밭을 상상조차 못 할 만큼 집어삼킬 것이다. 지금보다 몇 배 더 많은 전기와 물을 빨아들일 것이다. 더 많은 원전과 밀양을 만들거라 말한다. 젊은이들은 지역민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해 영끌을 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를 여행했지만 나는 작은 마을의 농민 가족 출신임을 잊은 적이 없다. 이는 과도한 낭만주의와 돈키호테식 이상주의에서 나를 보호해주었다. 나는 식량이 슈퍼마켓이 아니라 흙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 내 뿌리는 산업 사회와 자본주의의 약속에 대한 면역력을 주었다. 세계화한 마을에서도 전 세계에서도 이 약속은 ‘좋은 삶’을 주지 못했다. 나는 삶을 통해 자급이 지구의 현재와 미래에 마을과 세계에서 삶을 유지할 단 하나의 희망임을 배웠다.”(14쪽)
남태령 시위가 있던 밤은 공교롭게도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이었다. 그 밤을 함께 보낸 농민이든, 청년이든 이들의 불평등과 차별의 밤은 아직 더 깊어져야 하는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후 농민 단체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날 남태령이라는 광장은 각자 도생하던 이들이 서로를 만나 희망을 만든 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남태령의 그 날이 동짓날이었다는 점보다, 서울과 비서울의 경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점이 더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농민들이 남태령을 넘어 서울로 가려 했던 것처럼, 이제 서울에 고립된 청년들이 남태령을 넘어 지역으로 올 때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는 것 아닐까. 새로운 광장을 넘어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것. 마리아 미즈의 생애를 통해 이미 시작된 새로운 희망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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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 서울과 지역의 경계 - 홍주일보
지난 금요일 ‘홍성여성농업인지원센터’ 주관으로 상영한 영화 《남태령》을 봤다. 남태령은 과거 한양에서 삼남지역으로 내려갈 때 주로 쓰이던 교통로 중간에 있는, 서울 사당과 과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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