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 소소당당] 변화를 위한 서평단

대중이라는 종말, 이예이

 

 

‘우리는 같습니다. 나도 당신 생각과 같습니다.’ 나는 은연중 이런 메시지를 던지며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고자 한다. 얼마 전 숲길을 산책하다 만난 이웃 어른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랬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곳이고 언제나 그대로 있어 주길 바라는 장소다. 이웃은 그 숲에 있는 담배밭에 수레를 끌고 올랐다가 담뱃잎을 따서 내려온다. 한동안 매일 그랬다. 여름철이라 풀이 무릎까지 자란 데다가 울퉁불퉁한 흙길이라 젊은 내 몸으로도 수레를 끄는 게 쉽지 않은 곳이다. 나는 이 길에도 시멘트가 깔리면 좋겠다는 둥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이 대화를 두고두고 생각하게 됐다. 숲을 시멘트로 덮는 일을 ‘보통의 평범한’ 생각이라고 여긴 점과 상대방도 그런 말을 원할 거라 넘겨짚은 점이 그랬다. 

평범함이란 대체 뭘까. 내가 ‘보통이며 정상적인 시민’으로 받아들여지고자 할 때 상정하게 되는 그 평범함이란 대체 뭘까. 평균적인 것? 인류를 다 더하고(+) 나누면(÷)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평범과 보통 그리고 정상에 대한 추구는 허구적이고 옳지도 않아 보인다. 

 

이 책은 브라질 원주민 운동을 이끈 크레나키의 글들과 그에 대한 후기들로 구성돼 있다. 1500년, 카브랄(카브라우)을 앞세운 포르투갈인들은 브라질 땅을 침략하고 약탈했다. 원주민은 ‘하위 인간’으로, 자신들 백인과 ‘같은 인류’가 아니라는 명분이었다. 크레나키는 이를 부정하는 대신 같은 질문을 돌려준다. “우리는 과연 하나의 인류인가?”

어렸을 때 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엔 원주민 문화를 소개하는 쇼가 자주 등장했다. 화면에 비친 그들의 생활을 보며 이 편안한 삶에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원주민 문화를 포착하는 주류 미디어의 시선은 네이션-국가 체제야말로 진보된 형태라는 믿음을 교묘하게 전파한다. 이런 탐구는 “자기 정체성에 관한 내적 이해의 확장”에 그친다. 반면 크레나키의 글들은 그런 시청자의 시선을 브라운관 속으로 끌고 간다. 역으로 뒤집힌 이 세계는 렌즈를 응시하는 원주민의 시점이 있다.

그러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문명이 ‘야만’을 바라볼 때 그 반대의 응시가 있다. 원주민 집단의 시선에서 우리가 ‘보통’이라 여기는 시민성이란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삶의 다른 형태들이 가진 잠재적 역량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브라질의 야노마미인들은 탐욕적인 백인을 두고 ‘상품인’이라는 종족명으로 부른다. 

후기를 쓴 고다르는 “크레나키가 말하는 세계의 종말, 그것은 ‘백인들’”이라 선언한다. 이때 백인은 인종적 개념을 넘어 ‘상품인’ 모두를 지칭한다고 봐야 한다. 이 선언을 통해 ‘종말’은 여러 맥락을 띤다. ‘선택된 그룹’은 석유문명이라는 잔치가 끝나는 것만을 종말이라 이해하곤 한다. 크레나키는 ‘대중혁명’이라는 ‘살인적인 인류주의(휴머니즘)’으로 인해 이미 종말을 경험했으며 거기에서 살아남은 집단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한다. 

단지 아마존의 소수 민족 이야기만이 아니다. ‘대중’이라는 종말로부터 살아남은 모든 집단- 좁은 개념의 시민성을 획득하는 대신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과 세계관을 유지하며 사는 집단 모두의 이야기다. 이들에겐 ‘밀림의 시민성(florestanial

)’이 있으며 이는 “정의의 여러 형태를 발전시키고 있다. 그 정의의 형태들에서는 사회와 자연 사이의 분리가 흐릿하게 유지된다(71쪽)” 후기를 쓴 카스트루는 ‘땅에 내재적’이며 ‘초월적 권위에 예속되는 것에 저항’하는 모든 집단을 ‘원주민 집단’이라 명명한다. 그들의 독특한 정의 덕분에 “자연은 여전히 번영하고 있고, 우리는 양식과 살 곳을 마련할 수 있다.(47쪽)” 지구 각지에서 이들이 일구고 있는 장소는 ‘마지막 피난처’들이다. 

앞서 이야기한 이웃 어른은 내 실언에 동의하지 않으셨다. 이곳은 시멘트를 깔아선 안 되는 땅, 이대로도 좋고 괜찮은 땅이라 하셨다. 농촌은 밀림의 시민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장소다. ‘인류라는 이름의 분쇄기’에 갈리지 않은 ‘오래된 정체성’을 간직한 이들이 생존해있다. 비틀거리며 수레를 끄는 이들이 있어, 언제고 ‘상품인’으로 추락하려 드는 나의 종말은 늦춰지고 있다.

 

https://www.hj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415

 

대중이라는 종말 - 홍주일보

‘우리는 같습니다. 나도 당신 생각과 같습니다.’ 나는 은연중 이런 메시지를 던지며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고자 한다. 얼마 전 숲길을 산책하다 만난 이웃 어른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랬다.

www.hjn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