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터진 5000억 원짜리 ‘공익제보’로 지난 몇 주간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우리나라 유전 발견 소식을 전했고, 곧 시추에 들어갈 것이라 했다. 실제 시추를 위한 예산 120억 원이 올해 편성됐고, 매년 1000억 원씩 5년간 총 5000억 원 예산을 편성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산유국이라니. 하지만 취재가 진행될수록, 유전 가능성의 근거가 터무니없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글로벌 석유기업 우드 사이드가 15년간 한국석유공사와 ‘같은 곳’을 탐사한 결과,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지 불과 1개월 만에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윤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한 카르텔. 그 추악한 녀석이 얼굴을 또다시 드러냈다. 국민의 최고 대표자의 공익제보가 아니었다면 세금 5000억 원을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닷속 구멍에 쏟아부을 뻔했다.
독일 정치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주의의 폐해로 관료가 공익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직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것을 꼽았다. 조직의 예산이 커지면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인원이 늘어난다. 승진 가능성이 커지고, 퇴직 후 전관예우 취업처도 넓어진다. 조직 규모를 늘리지 못한다면 최소한 지금의 크기가 유지시켜야 한다. 기후붕괴가 인류에게 경고하는 것은 이제 석유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경고가 있거나 말거나 석유공사 관료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어떤 사업은 끝끝내 예산 배정이 어려운데, 어떤 사업은 이토록 쉽게 예산이 주어질까. 책 《복지의 문법》은 여기에 답을 해주는 책이다. 책의 부제는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정부, 가난한 국민’.
책을 통해 우리나라 복지 현황과 세계 흐름을 비교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체 병상 중 공공 병상 비율은 10%이지만 OECD 평균은 71%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국내 유아 비율은 21%지만, OECD 평균은 66%다. 국내 사회복지시설의 공공 비중은 12%. 2018년 기준 전체 고용 대비 정부 고용의 비율은 OECD 평균이 17%이고 한국은 7%다. 숫자로 보니 우린 왜 돌봄 압력을 받고 있는지, 근원을 알 것 같다. 게다가 저자는 이것이 실제 우리 생활에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덧붙인다.
(정부 고용률) 10% 차이를 단순 비교해봐도 공공일자리 개수에서 약 266만 개나 차이가 있다. 2018년 한국 취업자 수는 대략 2700만 명 정도이다. OECD 평균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전체 일자리의 10% 규모가 창출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일자리가 부족한 커다란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정부가 고용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돌봄 노동의 부담에 사로잡혀 있다. 사회화돼야 할 돌봄 노동이 여전히 무급 가족노동, 특히 여성 가족 구성의 노동에 의존한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진출을 가로막고 경력 단절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이다.
국가 고용을 늘리면 재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따라온다. 그러나 이는 소득세와 거래세를 통해 회수가 가능하다고 한다. 국가 재정의 지출 방향을 조금만 바꿔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만 지원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최근 홍동면에서는 홍동천 지역하천 정비사업을 위한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80년에 한 번으로 예상되는 강수량에 대비해 하천 폭을 넓히는 사업이다. 약 2㎞ 구간 하천 폭을 넓히는 사업으로 넓은 면적의 논이 도로가 된다. 홍수 대비를 위해 홍수 방지 기능을 하는 논을 없앤다는 논리도 이해가 안 가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홍성군이 ‘공사를 하는 김에’ 2차선 도로 건설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하천 폭 1m를 늘리려던 하천사업에, 도로 폭 2~3m가 늘어나는 사업이 얹어져 ‘도로사업’이 됐다. 공사에 필요한 예산은 최소 300억 원이라고 한다.
고속도로 1㎞를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이 35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고속도로 수천㎞를 까는 토목은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공공병원 같은 사회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 아니라고 본다. 고속도로 1㎞를 건설할 비용이면 대략 공공어린이집 7.5개, 200병상 규모의 공공요양병원 2개, 70명 정원의 노인이나 장애인 입소시설 5개 정도는 지을 수 있다. 복지정책은 국가에 돈이 없기 때문에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의 문제다.(98쪽)
한국은 흑사병 시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어들 예정이다. 이제 우리는 축소되는 세계를 살게 된다. 다가오는 소멸을 대비해야 할 때에 우린 여전히 팽창시대의 관념을 답습하고 있다. 축소된 시대에 지방 도시는 인프라 유지를 못해서 더 가난해질꺼라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가 발맞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
시내버스 전면 무료를 시행하는 일, 면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이 지역 민주주의를 증진하게 하는 일, 친환경 농업을 장려해 군민들이 지역에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일, 농촌 폐기물 수거 지원 인력을 배치해 불법 소각을 막는 일, 홍성의료원에서 전문과 치료가 가능하게 하는 일, 사회복지사가 의료진과 방문진료를 가는 일 등. 시장의 문법이 아닌 복지의 문법으로 지역의 미래를 그려보면 어떨까. 석유가 식수보다 가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가 지금 뚫어야 할 구멍은 무엇일까. ‘도로’에서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도로’가 사람을 유입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도로만 남은 미래에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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