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뉴스는 기후위기로 인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잘못돼 간다는 사실을 전해온다. 우리는 매번 놀라지만, 우리의 행동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과학기술과 인문사회를 아우르는 프랑스의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계급’이라는 친숙한 개념을 가져와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나아가 저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녹색 계급의 출현”이 임박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생산의 확대(생산성)가 아닌 지구의 거주 가능성을 우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살아가는 수단으로서의 세계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로서의 세계를 결합하자고 제안한다. 얼핏 듣기에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경제성장, 진보라는 미명하에 점점 외면해 왔던 이야기다. 익숙한 듯 새로운 메시지를 저자는 이렇게 부연한다. 이것은 후퇴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우리 삶에 필요한 조건에 대한 이해의 확산이라고.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출현한 ‘녹색 계급’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재규정해야 한다. 우리의 터전을 망가트리며 성취한 생산은 뒤처진 것이며, 퇴보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장소를 더 낫게, 지속할 수 있게 가꾸는 것이 진보이다.
물론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이백여 년간 우리를 선동해 온 발전-번영으로 표현되는 진보주의(근대화)가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제안에 선뜻 동참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녹색 계급’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가 다수임을 자각하는 것뿐이라며 우리를 안심시킨다.(73쪽) 게다가 살아가는 수단으로서의 세계와 터전으로서의 세계와의 분리는 공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분리는 시간에서도 이뤄졌다. 즉, 다음 세대에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전가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에 부당함을 느끼는 아이, 청소년, 청년들 역시 녹색 계급의 일원이라고 말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수단으로서의 세계와 사람들이 사는 장소로서의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감수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감수성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라투르는 ‘생산의 리듬에 맞춰 나가기를’ 거부한 자, 그래서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 그리하여 ‘주변인이 된’ 자들을 주목하자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난 수십 년간 거침없이 성장하던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이들이 ‘주변인’이 되었을까. 지난 수십 년간 낮은 농산물 가격에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농민들이야말로 저자가 말한 우리 사회의 ‘주변인’이 아닐까. 이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터전을 녹색으로 채워가며 살고 있다. 농민이야말로 실제로 살아가는 터전으로서의 세계를 몸으로 체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기후위기에서 비롯한 국내외의 작황 부진과 그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은 말 그대로 “가장자리에 자리하는 것 같은 투쟁이 온통 모든 이의 생존을 위해 핵심적인 것”이 됐음을 명료하게 드러낸다.(91쪽) 낙후한 일로 치부된 농사는 우리의 삶이 무엇에 의존하는지 알게 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게 한다는 의미이다. 살아가는 수단인 동시에 살고 있는 장소로서 아름다운 농지는 말 그대로 수단과 터전이 일치되는 현장이다.
지금은 달이나 화성을 ‘지구화’(테라포밍)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지구화해야 하는 시점이다.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때가 됐다. 공간의 분리뿐 아니라 시간의 분리를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다시금 지구를 사람이 살만한 터전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설 농민은 법적으로 농업인으로 인정받은 사람뿐 아니라, 조그맣게라도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모든 사람일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배제하고 무시해 온 농촌과 농민을 재조명하고 다시 정의 내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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