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응답 시간이 됐다. “아시아권, 한국에서 벼농사를 많이 짓게된 이유는 뭘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어졌다. 벼의 원산지는 인도이다. 전세계의 40%가 벼의 열매인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한국에서 벼농사를 짓게 된 건 아마 다분히 생태지리적으로 기후에 가장 적합한 식량 작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했으면 출판기념회에 걸맞는 의젓한 답이 될 수 있었을 테지만 쌀중심주의자, 논농사온정주의자다운 사담이 이어졌다.
“한국인이 정이 많은 이유를 아시나요?”
논농사는 물길을 공유해야 하는 특성상 같은 대지 안에 농지를 소유한 사람들은 수시로 소통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 홀로 진행할 수 없는 고된 일은 ‘두레’라는 문화를 통해 유지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서 지을 수밖에 없는 농사. 그게 오지랖이 되기도 하고 의지가 되기도 하는 ‘정(情)’이라는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정이 담긴 논에서 나온 생산품인 쌀을 주식으로 먹고 살았으니 자연스럽게 ‘한국인은 정의 민족이 될 수밖에 없었다’라는 속설(?)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전했다.
오 선생님 특유의 소박한 고집에 진지함까지 얹어지니 청중은 은은한 공감을 내비치는 한편 참을 수 없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과학과 이론의 힘으로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보이는 자리에서 이성의 렌즈 따위로는 증명할 수 없을 ‘정‘의 분석이 더해지는 이 풍경이, 결국 또 ’정겨워서‘ 나도 소리 내 웃었다. 평상시의 온화한 그답지는 않은 “그러니 우리는 쌀을 지금보다 더 많이 먹어야 해요!” 다소 으름장에 가까운 발언까지 이어지자, 질의응답 시간은 황급히 마무리됐다.
<벼의 일년>은 벼의 생애를 꼼꼼하게 관찰한 결과가 담긴 책답게 정보가 넘친다. 여러 흥미로운 정보 중 인상 깊어 오래 머물렀던 페이지가 있다.
저자들은 ‘밥 한 공기에는 쌀이 몇 알이나 들어갈까?’라는 궁금증에 답을 찾기 위해 검은 종이 위에 한 공기 분량의 쌀알을 늘어놓는다.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의 양은 평균 100~120g이다. 밥 먹는 양이 줄어든 현 상황에 맞게 100g의 쌀을 계량해 한 톨 한 톨 늘어놓으며 수를 세기 시작한다. 한 줄에 100개씩. 각각 모두 다르게 생긴 쌀알이 검은 종이를 점점이 채운다. 쌀눈의 방향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접착제 없이 종이 위에 쌀알을 올리는 일은 고요하고 느리게 치러졌다.
나는 운 좋게도 오 선생님이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알의 양을 헤아리던 때, 학생 신분으로 풀무학교 전공부에 있었다. 고단한 농사 실습을 마치고 해가 저문 후에도 교실 한구석에 남아 몸을 잔뜩 낮춘 채 한 톨 한 톨 열과 행을 맞추며 수를 세던 오 선생님. 그 행위는 집념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쌀알의 숫자를 세어본다는 의미를 넘어서 수년 동안 인간종을 먹여 살려온 쌀알의 공로에 감사를 올리는 제의와 닮아 있었다.
쌀 100g,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알의 수는 5200개라는 결과치를 얻어냈다. 5200개의 쌀알은 벼가 될 수 있는 각각의 씨앗이기도 하다. 얼마나 수많은 생명이 나라는 한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는 걸까. 한 송이의 벼꽃은 피고 지기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30분 동안 벼꽃은 껍질을 열고 수술을 내밀어 수정을 진행하고 목적을 달성하면 다시 껍질을 닫는다. 쌀알 한 톨은 꼼수 하나 없이 성실하게 차근차근 정해진 수순에 따라 비로소 영근다. 이 과정을 목격한 자는 목격하기 이전의 자신과 어떤 점이 달라져 있을까?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벼의 일년을 목격한 나는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흰 쌀알을 물에 담궈 씻어냈다. 뽀얀 쌀뜨물은 모아서 마당의 목련나무님에게, 집 안 곳곳을 밝혀 주는 초록 화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바쳤다. 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씻긴 흰쌀 위에 얹고 밥솥에 전원을 넣어 취사 버튼을 눌렀다. 내가 먹어 왔고, 오늘도 먹었고, 앞으로 먹을 쌀밥에는 벼가 생을 바쳐 만든 결실이 담겨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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