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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소소당당] 변화를 위한 서평단

‘고령화 농촌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이동호

 

 

봄에 나는 새순 대부분은 먹어도 된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봄은 짧아졌지만 농촌에 와 작은 땅을 일구고 이곳을 알아갈수록 봄이 길어진다. 두릅에서 시작한 나무순은 오가피, 화살나무, 찔레로 이어지고, 냉이에서 시작한 봄나물은 달래, 머위, 원추리로 이어진다. 데치고, 튀기고, 싸 먹고 무쳐 먹는다. 이 나물에는 소금 간이 어울릴까요? 된장으로 무치는 게 어울릴까요? 이웃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마을 어른들은 나물의 가장 맛있는 때와 조리법을 알고 있는 척척박사다.

‘나물’은 한반도의 독특한 문화다. 우리는 산천에 자라는 거의 모든 식물을, 그 식물 대부분의 부위를 각각의 방식으로 먹는다. 식물에 있는 각종 독을 없애는 방법을 선조들은 어떻게 발견했을까. 대단하다. 건강과 환경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채식을 우리 문화는 오래전부터 발달시켜 왔다. 물론 나물을 먹는데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첫째는 맛이고, 둘째는 나 스스로를 잘 돌보기 위한 기술을 익히고 싶어서다. 

 

책 《돌보는 힘》은 건강미디어협동조합에서 번역하고 출판한 간병 입문 책이다. 책은 1980년부터 일본에서 노인 병원을 운영한 의사 오쓰카 노부오를 인터뷰했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고령화사회를 마주하고 있는 일본, 그 속에서 돌봄을 중심을 둔 의료를 실천하는 전문가의 대담집이다. 책은 앞으로 가족을 간병할 수도 있고, 자신이 간병 대상자가 될 수 있는, 혹은 현재 간병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돌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좋아하는 음식은 목에 걸리지 않는다든지, 상대를 아이 대하듯 말하지 않기, 치매에 걸려도 혼자 사는 게 좋은 이유 등이 담겼다. 책은 이상적인 간병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간병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간병 본연의 자세에 대한 힌트를 준다. 

(고령자 케어 초기에는) ‘노인이건 자리보전하고 있는 환자건 의료의 힘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했어요.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치료법을 다 써 봐도 좀체 차도가 없었어요. …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는 사람이든 치매가 있는 사람이든 질병으로 들어온 사람이든, 모두 다 ‘여기에서 지내는 시간은 인생의 마지막에 너나없이 경험하는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기본으로 갖춰 놓고 환경을 풍요롭게 만들자. 즉 의식주를 갖추자. 거기에다 돌봄과 치료를 결합하는 구조로 하자’ 생각했지요./치료보다 돌봄, 돌봄보다 일상생활, 이런 방향으로 우선순위를 완전히 바꾸셨군요. 

마지막에 들어갈 곳은 확실하게 정해 두어야 합니다. 불치병이나 자리보전한 상태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들어갈 곳을 건강할 때 미리 잘 보고 확정해 두어야 해요. 다만 그곳에 들어가는 시기는 가능한 한 미뤄 둡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동원해서 그곳에 들어가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도록 노력합시다. 저는 늘 그렇게 조언합니다. 내가 죽을 곳은 여기라고 정해 두면 인간은 불안감에서 해방되는 법이죠. 그렇게 되면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본문 중)

노인 돌봄을 오랫동안 했던 오쓰카 노부오가 깨달은 것은 시설은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까진 일상을 잘 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동네 풍경이 달리 보인다. 오늘도 동네 어르신들은 밭에서 들에서 일상을 만들어 간다. 들판에서 뜯고 캐고, 마당에서 씻고 다듬고, 부엌에서는 삶고 볶으며 식탁에 올린다. 자연이 몸으로 연결되고, 과거에서 현재로 지혜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나물을 비롯해 마을 어르신들께는 배우는 게 많다. 메주 쑤기 좋은 날부터 장 가르기는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등등의 지혜. 챗봇은 따라갈 수 없는 생활형 척척박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분들이 땅에서 분리되고 시설로 가는 것은 우리 고유문화의 총체가 가둬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분들이 원래 있는 자리에서 일상을 영위할 때 우리 문화는 발현되고 이어지지 않을까. 튼튼한 뿌리를 가진 나무가 다음 봄에도 새로운 싹을 피워내듯. 지역 소멸속에서 단기적인 대처가 아닌 장기적인 돌봄 체계를 준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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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농촌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 홍주일보

봄에 나는 새순 대부분은 먹어도 된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봄은 짧아졌지만 농촌에 와 작은 땅을 일구고 이곳을 알아갈수록 봄이 길어진다. 두릅에서 시작한 나무순은 오가피, 화살나무, 찔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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