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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소소당당] 변화를 위한 서평단

지역을 바꾸는 글쓰기-《서사의 위기》를 읽고, 이예이

 

두 달 전부터 ‘지역을 바꾸는 녹색문고’라는 모임에 나가고 있다. 책을 읽고 그에 관한 글을 쓰는 서평 모임이다. 읽기, 쓰기를 꾸준히 하고 싶어 참여하게 됐는데, 참여 문의를 하기까지는 꽤 오래 주저했다. 지역을 ‘바꾸는’ 읽기와 쓰기를 지향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역 혹은 그 속의 나를 성찰하는 시도는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어려울 것 같았다. ‘그냥’ 서평 모임이면 주저 없이 참가했을 텐데 망설이게 됐다. 그런데 ‘지역에 대한 글쓰기’와 ‘그냥 글쓰기’의 차이는 뭘까? 이런 구분이 문득 모호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이번에 소개할 책 《서사의 위기》는 인식 체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책이다. 이때 서사는 근대 이전의 자아개념 그리고 정치적 행동의 원천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이 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통과하며 우리의 자아개념은 서사적 존재에서 소비자로 ‘위축’됐다. 한편 서사를 통해 이 위축된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근대의 위축증’은 이 책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개념이다. 저자는 서사적 존재였던 인간이 데카르트 이후 세상의 부분에 불과한 ‘구성자’로 위축됐다고 말한다. 인간은 여러 시간-세대에 걸쳐 축적된 공동체의 경험과 이야기 그 자체였다. 그 무대인 공간-장소-땅과도 구별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선언하며 ‘개인’으로 떨어져 나온다. 시간, 공간, 인간은 각각 위축돼 분리된다. 여기서 모든 근대의 사고방식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대의 위축된 사고방식이 신자유주의를 가능하게 했다. 소비주의, 발전주의적 인식의 틀로 세계가 재편되고 구성자-개인의 정체성은 소비자가 된다. 위축화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저자는 ‘숫자를 통한 자기 이해-퀀티파이드 셀프(Quantified Self)’ 현상을 사례로 든다. “이것의 신봉자들은 이야기, 기억, 성찰이 아닌 계산과 숫자를 통해 자기 이해에 도달하려 한다.(51쪽)” 구성자-개인은 현재 ‘정량 가능한 데이터’로 쪼개지고 있다.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은 서사가 아니라 스마트 기기에 찍힌 숫자-데이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사-자아의 데이터화는 인간의 내면까지 판매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스토리셀링’이라는 제목의 챕터에선 자아 혹은 서사의 상품화에 대해 성찰한다. 우리의 정체성이 정보로 쪼개지면 ‘전체 삶이 기록화의 대상’이 되고, 이 데이터는 훌륭한 광고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SNS 기업이 ‘소통’을 앞세워 ‘개인 서사’를 강조하고, 스토리텔링-자기 브랜딩을 부추기는 이유다. 서사는 자기실현의 도구로 혹은 상품화된 데이터로 위축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공동체 이야기는 자기실현의 모델인 개인 서사로 눈에 띄게 분해되어 간다.(128쪽)”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서사의 역할이 ‘소통’이 아니라 다른 삶의 형식을 제안할 수 있는 ‘충격’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소비주의적 삶의 방식을 버려야 할 이유는 근대적 신념이 환상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지구와 인간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곧 세상 자체다. 이상기후라는 현상이 그 사실을 반증한다.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을 분리하는 위축된 시야는 세상을 끔찍하게 만들었다. 데이터화된 자아개념의 확산은 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역자는 서문에서 정보의 시대인 오늘날, 과거의 맥락과 자신을 연결할 것을 ‘서사 속에 존재의 닻을 내릴 것’을 제안한다. 읽기와 쓰기를 ‘지역에 대해 쓰기’로 확장하기 어려웠던 까닭은 구성자-개인-소비자란 제한된 정체성이 너무나 공고하기 때문이 아닐까. 장소와 시간 그리고 나를 분리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이 직관적으로 명확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일단은 이 모임에서 서평 쓰기를 통해 연습해 보려고 한다. 장소와 그에 얽힌 이야기에 뿌리내리는 일, 즉 ‘지역과 나’에 대한 성찰은 ‘서사 속에 닻을 내리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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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바꾸는 글쓰기-《서사의 위기》를 읽고 - 홍주일보

두 달 전부터 ‘지역을 바꾸는 녹색문고’라는 모임에 나가고 있다. 책을 읽고 그에 관한 글을 쓰는 서평 모임이다. 읽기, 쓰기를 꾸준히 하고 싶어 참여하게 됐는데, 참여 문의를 하기까지는 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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