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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당당] 변화를위한서평단 (2023~매주 서평 홍주일보 연재)

진짜 현실주의에 대하여, 윤찬솔 2026.09.17

이런 책을 읽으면, 말꼬투리 하나하나 잡으며 비장하게 논평을 내놓는 정치인들은 요란한 빈 수레로 보인다. 그래, 대통령도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기업총수 둘에게 ‘국민영웅’이라 추켜세우며 90도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나. 생활과 운명과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는 의미에서의 주체는 이미 제도적 정치 안에서의 권력이 아니라, 초국적 기업으로 보인다. 그러니 현 대통령의 그 폴더인사는 이미 존재하는 우위에 대한 인정에 불과했던 것인지 모른다. 물론 그런 방향을 더 추동한다는 면에서는 대단히 실망스럽지만.

자본주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초국적 기업의 영향력, 제도에의 각종 로비, 노동규제 무시, 이익 극대화를 위한 장기적인 시나리오 설계 등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 소재나 될법한 거대한 ‘음모’ 정도로 보일 수 있지만,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더하다. 두 탐사보도 기자가 추적하는 그 실상은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소리없는 쿠데타》다. 탄핵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쿠데타는 요란했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운동장을 더 기울게 만들고 있음에도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일제가 조선에 그랬듯, 철도는 근대 산업화의 상징임과 동시에 수탈의 상징이다. 값싼 노동력과 각종 자원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이다. 조선의 쌀이 이 철도에 실려 일본으로 넘어갔다. 풍년에도 조선에선 쌀이 모자랐다. 중요한 건, 식민주의가 사라져도 이러한 제국의 인프라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견고하고 넓어지고 세밀해진 그물망은 여전히 후진국의 부를 선진국으로 옮기고, 세계은행, 각종 국제투자자 보호제도, WTO, 각종 FTA 등에 의해 제도적으로 ‘합법’이 됐다.

《소리없는 쿠데타》 클레어 프로보스트, 매트 켄나드/ 소소의 책/ 2025년 4월/ 25,000원

 

 

1957년, 10월, 일주일간,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 호텔, 타임지의 후원, 정·재계 엘리트 500여명, 국제산업개발회의,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국제 사법제도와 중재 법원 설치 논의, 주창자는 독일의 유명 은행가 헤르만 압스, 그 뒤에 따라붙는 세계은행 총재, 국회의원, 법률가의 이름들.

보이지 않는 수탈의 철도가 또 한 번 소리없이 놓인 그런 사건이었다. 이른바 ‘숨겨진 자본주의 대헌장’이다. 여기에 기초해 만들어진 것이 1966년 세계은행의 하부기관으로 출범한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이다. 선출되지 않는 기업 권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각국의 규제에 대해 소를 제기한다. 그리고 재판 결과는 때때로 오폐수 규제에 대한 완화, 에너지 규제를 무시한 석탄화력발전소의 추가 건설, 무분별한 광산 채굴 등을 강제한다. 정부가 내야 하는 배상금은 시민의 세금이다. 워싱턴D.C 한구석에 박혀있는 유명하지 않은 기관 하나가 우리의 생활과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에 특화한 로펌들은 정보의 불투명성을 장점으로 홍보하고, 재판 자체에 투자자들을 모집한다. 

기술과 기계가 발달할수록 자연에서 자원을 뽑아내는 양과 속도는 증가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가 생기며, 임금이 올라 소비를 촉진하고, 이 끊임없는 수요가 다시 생산을 촉진하고, 더 거대해진 기계의 생산속도에 따라, 광고에 따라 더 많은 소비가 일어난다. 이런 면에서 전쟁과 재건은 최고의 사업이다. 전쟁은 무기상품의 실험장이자 소비지이고, 그렇게 부수면 각종 인프라를 다시 지어야 한다. 이들에게 팔레스타인은 할리우드 영화의 세트장을 폭파시키고 다시 짓는 것 정도로 여겨지는 게 아닐까. 영화가 계속 나오듯 전쟁은 이어지고, 이게 경제성장과 개발의 면에서는 선순환이다.

이만한 ‘악순환’도 없다. 그 바닥에는 끝없는 쓰레기가 쌓이고, 파괴된 자연과 자기들을 수탈할 인프라를 만드는 사람들과 뜨거워진 지구가 있다. 경제성장의 선순환은 동시에 착취의 악순환이다. 

신자유주의의 승리를 말한, ‘역사의 종언’ 발언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게 유일한 ‘현실’로서 말해지고, 그 바깥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 일상을 이루고 있는 물건 중 절대다수는 기업에서 생산한 상품이다. 대기업을 욕하긴 쉬워도, 친한 사람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건 좋은 일이다. 과거 제국의 폭력성을 욕하긴 쉬워도, 그 제국의 인프라를 이어받은 거대기업들은 깨끗해 보인다.

기술패권의 시대라고들 한다. 그 안에서 국가든, 사람이든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한다고 한다. AI가 할 수 없는 구석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뒤처질 수 없으니 더 빨리 가야 한다고 한다. 이게 ‘현실주의’로 이해된다. 세상이 이런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하지만 이런 ‘현실’은 어쩌면 암세포 같은 게 아닐까. 전체가 죽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걸 모르는 채 당장의 증식에만 열을 올린다. 주가와 GDP의 상승은 자연에서 그만큼 많은 것을 빼먹어온다는 것이고, 딱 그만큼 미래를 갉아먹는다.

지금의 한국은 그 현실주의의 끝판왕으로 보인다. AI 광풍에 힘입은 반도체 수요의 급격한 상승에 한국은 명운을 걸었다. 그 뒤에 가려진 거대한 물리적 인프라, 송전탑, 발전소, 데이터센터 등은 결국 어딘가에 지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지역균형발전으로, 기업 유치 실적으로 여겨진다. 그래, 숫자는 또 올라가고, 이런 게 지역소멸의 대안으로 말해진다.

그러면서 공기 좋고 물 좋고 풍경도 예쁜 ‘자연’으로 휴가를 떠나고 싶어한다. 시골 곳곳에 송전탑과 공장과 발전소를 계속해서 박아놓을 계획이면서 대체 뭘 기대하는 걸까. 당장에 되나, 안 되냐의 ‘현실’적인 계산에 따른 ‘지속 가능한 개발’ 전략들은, 그쯤 되면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새로 사야 하듯이, 끽해야 5년, 10년짜리인 것 같다. 그것들이, 비도 안 오는 화창한 날 때 아닌 대홍수로 수천 명이 죽은 네팔의 사람들에게 무슨 ‘현실’을 줄 수 있을까.

어쩌면 ‘비근대사회’의 농사와 같이, 쓰레기 없이, 물질적 풍요는 가난과 궁핍을 겨우겨우 넘길 정도면 충분한, 자급과 순환의 경제가, 그 비현실적인 몽상이, 지금 시대에는 진짜 ‘현실주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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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현실주의에 대하여 - 홍주일보

이런 책을 읽으면, 말꼬투리 하나하나 잡으며 비장하게 논평을 내놓는 정치인들은 요란한 빈 수레로 보인다. 그래, 대통령도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기업총수 둘에게 ‘국민영웅’이라 추켜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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