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책 고르면서 너무 영화 인기에 편승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의 인기와 상관없이, 오디세이아는 분석할 거리가 넘쳐나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현대 판타지, 영웅 서사, 모험물들에 지대한 영향들을 미쳐왔다. 수많은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이야기인 만큼, 영화 이야기에서 더 깊이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오디세이아’ 원작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와 수많은 구전 설화들로 그리스 신화는 거대한 세계를 쌓았다. 그리고 그 세계의 황혼기를 장식하는 이야기가 둘 있다. ‘호메로스’가 썼다고 알려진 두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이다. 보통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잘 알 것이다.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헬레네’가, 손님이자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와 사랑에 빠져 고국인 스파르타를 등지고 트로이로 도주한다. 아내를 빼앗기고, 접대의 관습을 무시한 파리스의 행동에 헬레네의 남편인 ‘메넬라오스’는 분노한다. 이에 그리스 최강국인 ‘미케네’로 찾아가, 미케네의 왕이자 형인 ‘아가멤논’에게 그리스 연합군을 꾸려 출정하기를 권유한다. 이에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로 쳐들어가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10년 동안 전쟁을 벌인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이고, 일리아스는 이 트로이 전쟁 도중, 그리스의 명장인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의 사령관인 ‘헥토르’의 대결을 주목한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이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나며, 그리스군들이 귀향을 시작한다. 이 그리스군들 중 ‘이타카’와 왕인 ‘오디세우스’의 귀향 이야기를 담은 것이 바로 ‘오디세이아’다. 귀향길에,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저리 가라 하는 수준의 위기들을 겪는다. 식인종들과 거인들에게 공격당하지 않나, 부하들이 과일을 먹고 중독 증세를 보이지 않나. 결국에는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서 귀향도 늦어진다. 오디세우스를 향한 유혹들도 만만치 않다. 여신인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신으로 만들어줄 테니, 아내를 잊고 자신과 살자고 유혹한다.
또한 굶주림에 시달릴 때는, 코앞에 뛰어노는 태양신의 소들을 보며 배고픔에 저항한다. 그리스 신화를 통틀어 이만한 고난을 겪은 인물은 ‘헤라클레스’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헤라클레스는 사실상 반신(半神)이고 괴물들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괴력이라도 있지, 오디세우스는 괴력도 없는 인간이다. 그리고 바로 이 한낮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이 바로 오디세이아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같은 서사극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주인공들인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이 둘은 차별점이 너무나도 도드라진다. ‘일리아스’가 전쟁 서사극이자 ‘아킬레우스’의 무용을 돋보여주는 이야기라면, ‘오디세이아’는 모험물이면서 ‘오디세우스’의 불굴의 정신과 재치를 더 조명한다. 아킬레우스는 누가 봐도 화려하다. 여신의 피를 이어받았고, 그리스군 최고의 무장이라는 수식어가 뒤를 따른다. 오디세우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신 같은 아킬레우스의 후광 앞에서는 한낮 인간이다. 그럼에도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와 달리, 신들의 분노와 고난 앞에서도 살아남는다. 명예를 중시하는 아킬레우스와 달리, 오디세우스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교활하고 뻔뻔스러운데다가, 주도면밀하기는 ‘아테나’ 여신도 질리게 만든다. 신체가 약한 인간이기에, 대신 정신력이 무시무시하게 굳건하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의 목적은 단순히 ‘생존’과 가족을 보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다. 아킬레우스와 달리, 오디세우스의 동기에는 영광이 없다. 그저 인간 본연의 욕망이 있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 아킬레우스는 구시대적 그리스 서사를 대표하는 마지막 영웅인 셈이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현대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시대의 서사를 대표하는 영웅인 셈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영웅은,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이것이 오디세우스의 매력이다.
같은 인간이기에, 우리는 오디세우스의 동기와 바람에 더 쉽게 공감한다. (묘하게도 영화 ‘오디세이’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인 스파이더맨 또한 이 부분에서는 오디세우스와 비슷한 이유로 사랑받는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영광’이라는 개념은 화려할지언정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처럼 하루하루 사랑하는 이들과 잘 살고 싶다 하는 욕망은, 누구도 쉽게 부정하지 못한다.
호메로스는 인간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인간상을 오디세우스라는 한 인물에 집약시킨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은 어쩌면 호메로스가 표현하고자 한 ‘인본주의’ 사상의 집약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오디세우스의 결의와 끈기에 결국 신들도 오디세우스를 죽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리스 신화 세계에서, 신들의 뜻은 절대적이다. 트로이 전쟁도, 이면에는 신들의 갈등으로 벌어진 사건이니 말이다. 그런 세계에서, 신들의 뜻마저도 거슬러 살아남은 오디세우스를 통하여 호메로스는 그 먼 과거에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간은 신이 아닌, 스스로의 뜻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 인간은 과연 어디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현재 우리는 기술이라는 새로운 신을 섬기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3대 메가 프로젝트 계획에 따라 전국에 우후죽순 들어서게 될 AI 데이터 센터, 반도체와 로봇을 위한 공장들이 우리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 격변이 예상되는 앞으로의 시대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집 찾아 삼만리-오디세이아 - 홍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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