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수막 몇 개 다는 걸로 송전선로를 막을 수 있는 거면 참 좋을 텐데요, 그쵸?”
송전선로 반대 현수막을 거는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서 동행한 활동가가 말했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마음에 자원해 함께 세 개 면을 돌았다. 피까지 차게 식히는 듯한 찬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강추위에 우는 소리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날렵한 그의 몸놀림을 보며 말을 아꼈다. 그는 현수막을 튼튼하게 거는 법, 또 수거할 때는 쉽게 풀 수 있는 법을 공부해 왔다며 방법을 알려줬다. 그 모습에 담긴 어떤 해맑음을 따라 투덜거릴 새 없이 칼바람 속에서 낯선 일을 해냈다.
그 후로 대책위가 꾸려지며 송전선로를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마을 초입 마다 걸리기 시작했다. ‘철탑 밑에 너 같으면 살겠냐?’ 같은 말부터 ‘농촌은 도시의 전력 식민지가 아니다’ 같은 말들이 모여 현수막이 되고, 곳곳에 붙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남에서 시작해 수도권의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시설까지 전기를 흐르게 하는 총길이 3855km 송전선로. 소식을 처음 들은 게 작년, 25년 겨울인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현재는 지역마다 입지선정위원회가 열리고 있으며 지역민들은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높여가는 중이라고 한다.
이 와중에 꽃 나들이 간다고 당진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보이는 철탑이 새롭게 느껴진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둥, 모두 연결된 존재라는 둥 쉽게도 말하고 산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저 거대한 철탑은 줄지어 선 채로, 온몸으로 말한다.
산 능선과 논 한가운데 서서 ‘이게 바로 전기 에너지의 실체야’라고 뼈만 남은 기괴한 몸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 동네에 들어선다는 송전탑이 저거야?” 동행한 이에게 이런저런 물음을 던지는 동안 묵직한 무언가가 목에 걸린 듯 무거워졌다.
기고문 청탁을 받고 한동안 글을 시작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 땅에 세우지 마라!”라고 하기엔 나는 내 땅도, 집도, 고향도 없다. 뿌리 얕은 젊은 이주민인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무심한 도시 인구를 탓하기에는 대다수의 그들 또한 착취로 굴러가는 이 세계에 저당 잡힌 개개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데올로기와 죄책감이 아니라 이야기와 연대라고 믿고 싶었다. 또 국가와 기업에 손가락질하며 거창하고 당위성이 가득한 이야기를 하는 건 내 몫이 아닌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왜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에 빠질 수밖에. 나는 무슨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고 싶어 글을 쓰는가? 당진 가는 여행길에 늘어선 송전탑들을 보며 느낀 것을 말로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 목이 막혔던 것처럼, 글쓰기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에너지 저변에 깔린 어떤 착취의 흔적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목전에 두고 수치심에 숨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내가 글을 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던 지점은 폭력의 징후가 코앞까지 닥쳤다는 두려움과, 무엇보다 지금 이곳의 송전선로 건설을 막아선다 해도 다른 어딘가에서 반복될 일이라는 점이었다.
“서울로 오는 전기는, 도시로 오는 전기는 지금도 누군가의 두려움과 불안, 구체적인 위험과 폭력을 지우며 우리에게 오고 있다.” (전기, 밀양-서울/김영희/교육공동체벗/26쪽)
이미 세워진 철탑을,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이 거칠게 휩쓸고 지나간 밀양의 자리를, 거리 곳곳 흔히 있는 전봇대 하나까지도 “구체적인 위험과 폭력”의 징후로 읽어내는 감각이 필요하다. 건설사업을 전면 중단시킬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 내게 시급하게 느껴지는 문제는 송전선로를 땅속에 숨기는 일도 아니고 우회로를 찾는 일도 아니다.
송전탑이 세워질 자리 밑에 우글거리는 비인간 생물의 터전에 잠시라도 머물고, 송전탑이 휩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 얼굴의 주름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한다. 듣는 이가 없어 웅성거림에 그치고 마는 이야기를 모아야 한다. 송전선로를 따라 걷는 순례가 필요하다. 전기 에너지의 민낯, 수도권-비수도권의 불균형, 민주적인 절차의 중요성을 곱씹을 수 있는 순례. 여기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반복돼선 안 될 폭력의 징후를 읽어내는 힘을 기르는 순례. 송전선로 건설사업에 반대하는 지금이 모두에게, 누구보다 나에게 그런 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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