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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녹색당 논평, 칼럼

송전탑 반대 주민 릴레이 기고 4. 당사자의 선언문, 신지인/ 홍성신문 2026.04.04

지금껏 일상적으로 살아오면서 국가 제도의 수혜자라고 느낀 적은 없었고, 오히려 변두리의 소수자라고 스스로 정체화해 왔지만, 송전탑이 지어진다는 계획을 들은 순간 이제는 내가 국가 폭력 피해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밀양처럼 외톨이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초반부터 주민들이 대책위를 꾸려서 대응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한창 밀양의 상황이 심각했을 때는 미성년자였던 나도 밀양을 생각하며 도시 사는 공범자였다는 죄책감과, 제대로 함께하지 못했다는 수치심을 느꼈었다. 하지만 사건의 책임자였던 한전과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배운 걸까. 최근 충남도서관에서 겉치레로 치러진 국토 균형발전 토론회를 보면 그들은 인간성의 반성보다는 말살의 효율을 배운 것 같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중고등학부가 되면 매년 가을마다 밀양으로 연대 여행을 갔다. 대봉감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수확 철에도 송전탑 공사는 이어지니, 크게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학생들이 조를 나누어 감도 따고 시위도 나가고 했던 것이다.

첫 번째로 갔던 밀양 여행은 당연히 평화롭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아름다운 순간들도 남아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마을 회관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엄청난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있어서 밤에 보면 신비로웠고 낮에는 든든한 버팀목 같았다. 가을이 되어 주변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쉬는 시간을 맡은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회관 앞마당을 뛰어다녔다.

회관은 낡아 깨끗한 화장실이나 샤워실도 없어서 남녀 시간 바꿔 가며 등목하듯 씻어야 했지만, 왠지 그게 추억이 되는 따뜻한 느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다 같이 아침을 먹고 시위 나갈 아이들이 차를 타고 나가면 남은 아이들은 일손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따라 나갔고, 저녁이 되어 다시 전부 모이면 뜨끈한 회관 거실에 모여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창 개인적인 일로 힘들어서 투쟁이고 뭐고 관심을 둘 수 없었던 나에게도 그때의 밀양은 따뜻한 가을의 공간으로 남았다.

그다음 연도 가을. 몇 해째 빌려왔던 마을 회관이 마을 안의 분열이 심해져 더는 빌릴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그나마 송전탑 반대 주민이 많은 마을로 본거지를 옮겼지만, 거기도 마을 회관을 빌려줄 수 있을 정도의 인원은 되지 않아서 반대하시는 분들 끼리만 쓰는 작은 컨테이너를 숙소로 정했다.

그마저도 너무 작고 필요 시설도 없어서 대부분의 학생은 주민들 집에 나누어져야 했다. 위치는 마을 가운데가 아니었고, 우리는 그 마을의 손님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컨테이너는 좁고, 눅눅하고, 추웠다. 그 두 번째 여행에서 위로받았다고 생각한 순간은 없다.

내가 밀양의 여정에 함께한 것은 고작 이 두 번. 이것 가지고 그 싸움을 안답시고 떠들면 웃기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이 밀양에 저질렀고, 지금 우리에게 저지르고 있는 짓거리는 이와 같은 일이다. 모두가 같은 자리에 모여 삶을 즐기고 세상을 즐기던 공간과 시간, 관계들을 찢어발기는 짓이다. 그것도 그 순간들을 한 번도 같이 하지도, 소중히 여기지도 않았던 자들이.

이런 글을 적는다고 이 극악무도한 자들이 개심하여 ‘아 우리가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짓밟았구나’ 이러지 않을 걸 안다. 애초부터 그들이 이런 걸 생각했다면 이 글이 적힐 필요가 있긴 할까. 저들이 귀 없이 말만 하고 있으니 나도 그저 우리의 마음, 소망, 요구를 당당히 말하겠다.

알 수 없는 말들은 나가주오
살 수 없는 것들은 나가주오
함께 할 수 없는 건 나가주오  예람 <‘나가주오’ 중에서>

http://www.h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0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