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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소소당당] 변화를 위한 서평단

해일처럼 밀려오는 여성들의 목소리, 김혜진

일 년 동안 나에게 허락된 지면에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고,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갇힌 동물들을 걱정하는 사람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 시각장애인이지만 독립적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 남들과 다르지만 이것 또한 내 삶이라는 식이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혹은 성소수자들을 도울 수 있는 내용에 대한 책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들이다. 말로는 약자이기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지만 실제 인식은 그렇지 못하다. ‘정상성’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게 현실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소수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1박 2일간의 ‘남태령 대첩’ 이야기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농민들이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것에 같은 여성 혹은 소수자로서도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여성, 소수자, 농민, 여성 농민 등 모두 정체성이 다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고, 그 어떤 혐오도 없이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속에서 서로를 돕고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확인했다. 농민들에게 향했던 후원금 러시는 이제는 전태일 의료재단으로, 장기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로 향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집회에도 이례적으로 시민 300여 명이 함께 했다고 한다.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후드>를 읽으며 해일처럼 밀려오는 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시끄럽고 거침없는 그들의 목소리는 사나운 해일이라 할지라도 달콤하기 이를 데 없다. 무려 20여년 전, 성폭력 사건 해결 촉구에 다른 ‘범국가적인’ 일들 앞에서 ‘작은 일’이 뭐가 중요하냐고 핀잔하던 한 50대 남성 지식인의 말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오랫동안 비판받았지만 이렇게까지 통쾌한 역설을 그는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가 말했던 작은 일들, 즉 페미니즘 덕분에 남성 농민들과 노조 조합원들은 사상 초유의 연대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 부술 수 없다’는 말로 유명한 오드리 로드는 흑인이며 여성이자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며 시를 가르치고 차별과 혐오에 맞섰던 사람이다. <시스터 후드>는 그의 연설이나 산문을 모은 책이다. 그는 흑인 공동체에서는 레즈비언으로, 레즈비언 공동체에서는 흑인으로, 차별에 대항해야 했다.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은 누가 더 억압받는지를 두고 서로 싸우기보다는 우리의 힘을 모아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침묵은 절대 우리를 지켜주지 않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시화해야 하며 우리를 억압해온 언어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억압의 구조를 직시하고 침묵하지 말자는 그의 말을 읽으며 남태령 소녀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지 각색의 깃발들. 수 많은 ‘나’의 이야기들. 오드리 로드가 말한 ‘차이로부터 나오는 역동적 힘’, 바로 그것이다. 그는 차별이야말로 차이를 역동적 힘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라고 꼬집었다. 남태령의 소녀들은 이 힘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각자의 정의를 더욱 풍요롭게’하는 중인 것이다. 이 역사의 거대한 지각변동을 함께 기뻐하며 오드리 로드의 시 한 구절을 남긴다. 

 

나는 여성이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미소를 조심하라
나는 오래된 마법과
정오의 새로운 분노 
당신에게 약속된
드넓은 미래를 품은 위험한 존재
나는 여성이고 
백인이 아니다

 

(여성이 말한다 A Woman Speaks/ 오드리 로드 1934-1992)

 

https://www.hj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181

 

해일처럼 밀려오는 여성들의 목소리 - 홍주일보

일 년 동안 나에게 허락된 지면에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고,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갇힌 동물들을 걱정하는 사람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활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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