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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소소당당] 변화를 위한 서평단

“연말엔 사랑을”…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다시 읽으며, 이예이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또 읽고 있다. 벌써 n번 째 감상이다. 영화 <나홀로 집에>가 연말마다 방영되는 이유가 다 있다. 한 작품을 다각도로 감상하는 이른바 ‘덕후력’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도 이 시기엔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새로운 것보단 반복하고 싶은 몇 개의 작품에만 손이 간다. 

 

그와 함께 해온 지난 시간과 감정을 반추하고 싶어서 아닐까. 이 책은 내게 20대와 30대 사이 어느 시기를 연상시키는 ‘연말 책’이다. 최근 다시 읽으며 몇몇 장면에 마음이 아팠다. 내용이 슬퍼서는 아니었고, 그때보다 지금의 내 마음이 빈약해 보여 그랬다. 

 

확실히 나는 전보다 딱딱하고 방어적인 태도로 산다. 이 태도를 고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인기 있는 심리학, 뇌과학 책들의 설명은 이렇다. 

 

호르몬 수치나 신경계가 교란되어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를 지지해주지 못한 가정환경과 그것에 기인한 건강하지 못한 잘못된 뇌(심리)의 상호작용이 인간의 마음을 황폐하게 한다. 원가족의 자장에서 벗어난 성인이라면 스스로와 주변 관계를 돌보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는 문제가 된다.  

 

나쁜 정부가 나쁜 정책을 펼쳐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질 때도 문제다. 정권이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들이 되풀이해 벌어지고 있다. 국민적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사건들이 정의 구현 없이 장기간 산적해있다. 우리는 그 나쁜 논리에 분노하는 동시에 고스란히 학습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이 만화는 어렸을 때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매들은 장례식에서 이복 동생 스즈를 만난다. 아버지의 마지막 병수발을 홀로 감당해온 어린 스즈는 장례 기간 내내 울지 않고 씩씩한 태도를 보인다. 

 

모두가 남편을 잃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 스즈의 새엄마를 위로할 때, 큰언니 사치는 유일하게 스즈의 의지할 곳 없는 외로움을 알아본다. 사치는 자기 슬픔에 빠져 할 일을 아이에게 미뤘던 새엄마를 나무라며, 또 동시에 인간적인 연민으로 이렇게 말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마주한다는 건 정말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거든.” 

이 만화는 사랑엔 에너지가 든다는 어쩌면 무서운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얼마 전 아기를 낳은 친구는 아이의 수면이나 식사 시간에 맞춰 하루를 보내다 보면 우울할 틈이 없다고 했다. 이 시국에 그 말이 떠오른 이유는, 어떤 삶의 역설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반려견 산책이나 밥을 챙기는 등 어떤 대상을 돌보며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나도 꽤 자주 한다. 나 아닌 타자에게 에너지를 쏟아야만 오히려 자신을 지킬 수 있다니. 놀라운 삶의 지혜가 아닌가. 

 

지난 12월 7일 토요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대행진에 다녀왔다.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 탄핵안이 정족수 부족으로 폐기되다니 분노가 치밀었지만, 돌아오는 ‘탄핵 버스’ 안에서는 연말 감성이 느껴졌다. 아까는 그 일부여서 알지 못했지만, TV 화면 속 여의도 거리는 반짝이는 불빛들로 꽉 차 있었다. 그 때문인지, 버스 창밖에 휘날리는 눈 때문인지, 오랜만에 ‘광장’에 나와 사람들과 함께 있기 때문인지,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연말은 한 해를 돌아보고 주변에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기 좋은 계절이다. 나를 아프게 할지언정 신경 쓸 돌봄의 대상이 있다는 건 귀찮지만 동시에 무척 감사한 일이다. 미우나 고우나 애정을 쏟을 대상이 없다면 우리 삶은 허무 그 자체 아닐까. 

다시 이 만화를 읽었을 때 전보다 황폐해진 자신을 발견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기억하려고 한다. 이번 탄핵안 표결에 불참한 105명의 의원 명단 특히 홍성·예산 지역구 강승규 의원의 이름을. 

 

이번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되며 촛불집회가 곳곳에서 이어질 전망이다. 

 

내란 범죄자 윤석열과 그 부역자들인 국민의힘 심판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 자신과 우리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 연말은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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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엔 사랑을”…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다시 읽으며 - 홍주일보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또 읽고 있다. 벌써 n번 째 감상이다. 영화 가 연말마다 방영되는 이유가 다 있다. 한 작품을 다각도로 감상하는 이른바 ‘덕후력’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도 이 시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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