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배가 부른데도 먹을 것을 찾는 나를 깨달을 때가 있었다. 얼마 전엔 정크푸드를 입에 집어넣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했음에도 이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먹고 나서는 당연히 몸에 탈이 났고 후회를 했다. 언젠가부터 아이에게 차려 줄 식사를 준비하면서 부엌에 서서 대충 후루룩, 쫓기듯 먹는 게 일상이 됐다. 급하게 먹으면 당연히 또 속이 좋지 않았다. 불쑥 나를 덮치는 파괴적인 식욕 혹은 나쁜 식습관은 무엇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인지? 서가 한 편의 《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를 집어 들은 건 그 때문이었다.
이 책은 40년간 여성의 섭식장애를 연구해 온 저자가 섭식장애의 이면에 감춰진 여성의 심리와 이를 극복하는 방법들에 대해 쓴 책이다. 왜 하필 여성이냐면 섭식장애를 진단받은 사람의 95%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의 역사에서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억누르며 고통받던 여성의 역사는 바로 이 섭식장애와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섭식장애라는 단어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우리에게 낯설다. 물론 내가 겪은 약간의 과식은 섭식장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섭식장애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겨운 과정을 동반한다.
저자의 해법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여성 스스로의 직관과 감정을 잘 헤아리고 보살피는 것이다. 즉 남성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억눌려온 여성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성이란 여성만이 가진 것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남성적 기질과 여성적 기질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를 조화롭게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의 질서에 따라 내면의 남성적 측면이 우세하게 되고 여성적 측면을 통제하게 되면 억눌린 감정과 욕구가 허기로 표현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외로울 때 그럴 여유가 없다고 무시해버리거나, 다른 이의 행동에 화가 났을 때 내가 민감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삶을 뒤흔드는 고통스러운 질병인 섭식장애를 갖고 있지 않지만, 나 또한 이 책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의 ‘허기’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내 생활은 책 속 표현처럼 ‘반드시 끝내야 하는 일들의 목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몸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내면의 외침을 들을 시간 따윈 없었던 것이다. 특히나 감정을 살피는 것이 미숙한데 이를 위한 여러 가지 팁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질문을 바꾸기이다. ‘내가 이렇게 하면 친구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을 ‘방금 친구의 말을 듣고 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로 바꾸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게 무슨 팁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기 위한 방법을 모르거나 습관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질문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머리를 한 대 세게 맞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책은 온통 섭식장애에 대한 이야기지만 저절로 나와 주변인의 모습과도 겹쳐 보였다. 내가 해석하기로 저자의 통찰은 단순히 섭식장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던 이유다. 그것이 섭식장애든 우울증이든, 인생에 방해가 되는 멍청한 행동들을 자꾸 반복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 행동들은 어려운 감정 상황이던 시기에 그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어기제로 생존에 기여했음을 알아야 한다. 좋지 않은 행동들을 빨리 떼어내려 하기보다 그 공을 인정해주고 긍정하며, 다른 단계로의 걸음마를 서서히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통의 과정을 반복하는 사람의 주변인들도 숙지하면 좋을 내용이다. 이 사회에서 매일매일 몸의 신호와 본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책의 안내대로, 단 몇 분이라도 ‘행동하기’보다는 ‘존재하기’에 초점을 맞춘 시간을 마련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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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배가 고픈 날들 - 홍주일보
어느 순간, 배가 부른데도 먹을 것을 찾는 나를 깨달을 때가 있었다. 얼마 전엔 정크푸드를 입에 집어넣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했음에도 이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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