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여름이다. 한달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폭염 경보 문자가 울렸다. 그래도 입추가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고 야외 일도 할 만해졌는데, 올해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폭염은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고 해서 실내로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다행이지만, 실내도 아주 안심은 아니다. 코로나 재유행이라니 사람 모이는 냉방 공간도 위험은 계속된다.
기후위기가 내일 문제가 아니라 오늘 문제라는 것을 느끼기 충분한 봄과 여름이었다. 온난화라고도 하는 기후변화는 지구 평균기온이 일정하게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편차가 큰 날씨로 진행된다. 극단적인 가뭄과 폭우, 냉해와 폭염의 증가로 말이다. 모든 시민이 정치적 힘을 모아 온실가스 배출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 당장 탄소 중립을 이룬다 해도 우리는 최소 올해 같은 기후에 살아가야 한다. 이미 변화한 기후에 적응해야 할 방법도 필요한 시대가 됐다.
녹색평론사 편집부/ 녹색평론사/ 1만 7000원
지난주 말복, 마을에 복날 행사가 열렸다. 복날은 마을 연례행사로 삼계탕을 끓여 다 같이 식사를 한다. 부녀회는 이를 위해 전날 모여 장보기부터 재료 준비, 당일 아침에는 밑반찬과 삼계탕을 준비한다. 어르신들이 싸갈 수 있도록 넉넉히 끓인다. 뜨거운 여름 동안 다들 어디 계시나 싶었는데, 회관에는 30여 이웃들이 모여 앉아 복작복작하다. 회관에서 밥을 먹으면 인간다운 정도 느껴지고, 명절 같이 느껴져 풍성한 마음이 든다.
물론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책임도 필요하다. 부녀회는 오늘뿐 아니라 마을 청소 날, 동계 날에도 모여 화구에 불을 켜고 식재료를 다듬고 설거지를 한다. 부녀회뿐만 아니다. 숨은 자원 모으기 날, 마을 길 풀 깎는 날은 모두 나와 장갑을 낀다. 농촌도 기계화가 되면서 함께하는 노동이 없어지고, 품앗이는 사라졌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여전히 같이 모여 밥을 지어먹고 서로의 근황을 나눈다. 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하지만, 현재를 알고 있다는 점이 작은 위로도 된다.
“돌봄에서 중요한 것은 역할이 아니라 관계이다. 어떤 역할도 관계를 대신할 수 없다. 멀리 시내에서 온 요양보호사보다 마을에 함께 살고 있는 이웃복지사가 훨씬 중요한 이유이다.”
이번 《녹색평론》의 주제는 공공의료다. 내가 농촌에 사는 탓인지, 여러 글 중에 강원도 춘천에서 왕진을 다니는 양창모 의사가 쓴 <농촌 돌봄의 기발한 대안 두 가지>가 인상 깊다. 그는 글에서 ‘이웃복지사’ 제도를 소개한다. 이웃복지사는 행정안전부 돌봄연계강화 시범사업으로 이웃이 이웃을 돕는 복지 체계다. 이웃복지사는 하루평균 2~3가구를 돌고 교통비 등 월 70여만 원을 받는다. 이웃복지사가 너무 반가운 왕진 의사 양창모 씨는 이유를 설명한다.
“2년 전부터 상황이 극적으로 달라졌다. 내가 방문 진료하는 마을에 ‘이웃복지사’가 생긴 것이다. ‘마을은 1차 복지기관, 이웃은 1차 사회복지사’라는 기치 아래 이웃으로 함께 살고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이 복지사로 활동을 한다. 방문의료진과 늘상 소통하며 지속적으로 교육도 받는다. 덕분에 산소포화도 보는 방법부터 혈압, 혈당 측정하는 것까지 척척 해낸다.”
돌아보면 이웃복지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진 않지만, 홍성에서도 민간의 반찬 배달이나 꾸러미 배달이 있다.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동네의원에서는 올해부터 재택의료도 시행하고 있다. 우리도 조금만 변화를 준다면 돌봄망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어르신이 만성질환약을 잘 먹고 있는지, 산책을 하고 있는지, 혈당은 얼마나 되는지 등. “기능화된 돌봄만이 거의 유일한 노인 돌봄이 된 한국사회에서, 이웃복지사는 다시 관계적 돌봄을 불러오는 사람이다. 그들에 의해서 의료와 돌봄은 분리되지 않은 하나가 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자연기반해법’을 제시한다. 이 해법의 큰 줄기에는 농경지 보호가 들어있다. 농경지 보호가 기후변화를 막는다. 거칠게 해석하면 지금 붕괴되고 있는 기후변화는 소멸되고 있는 농촌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촘촘한 돌봄망을 구축하고, 이웃복지사라는 작은 일자리를 통해 농촌 소멸을 막을 수 있는 힌트를 함께 얻을 수 있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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