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몹시 아프다. 반성 없는 산업화와 세계화로 지구는 더 이상 스스로 정화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였다. 현시점에서 인류의 존망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문제로 환경오염이 등장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와 노력이 지속돼 1933년 이후 지금까지 170여 개의 국제환경협약을 체결하였다. 탄소배출 규제에 관한 교토의정서(1997년)와 폐기물 투기에 의한 해양 오염방지를 위한 런던협약(1972년)이 대표적이다. 런던협약에 서명한 나라들은 해양생물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한편, 폐기물 투기 금지 및 감시를 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현재 87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도 포함된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촉진하고 군사적 전용을 억제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연합 소속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있다. 지금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출의 폭거를 국제원자력기구가 돕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NRA)가 발표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계획’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국제원자력기구 중간보고서가 5월 4일 발표됐다.
방사성 오염수 방출이 가시화되자 우리나라에서는 소금 사재기와 수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소금의 경우 지난 6월 7일부터 13일까지 주간 온라인 판매량이 직 전주 대비 817% 증가(커넥티브웨이브 자료)했고, 천일염 가격도 83% 이상 상승했고, 물량 품귀 현상도 대부분 경험했을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을 예고했던 시기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국에서 생활필수품 사재기로 마트가 텅텅 빌 때도 우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우려가 현실화 됐다. 7월 4일 최종보고서가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채택되면서 8월 24일부터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출의 폭거가 시작됐다. 일본인의 35%만 찬성(NHK 여론조사)하고 우리 국민의 85%가 반대(환경운동연합 여론조사)하는 가운데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는데 국제원자력기구가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목적에 부합된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연구 결과인지 방류지원을 위한 설계였는지 심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1993년 러시아 해군이 방사성 폐기물 900톤(일본 약 134만 톤의 0.67%)을 블라디보스토크 남동쪽에 투기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물론이고 가장 격분한 나라가 일본이었다. 연일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방사성에 오염된 초밥을 먹게 됐다”라며 격렬한 시위를 했다. 내로남불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방사성 오염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정화된다. 다핵종제거설비를 통해 방사성 오염수 중 62개 핵종은 기준치 이하로 정화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 삼중수소와 트리튬은 정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화되지 않은 삼중수소와 트리튬은 바닷물에 100배 이상 희석하여 기준치 이하의 농도가 됐을 때 방출한다고 한다. 이런 논리라면 세상에 맹독성 물질은 단 하나도 없다. 희석의 마법으로 농도를 기준치 이하로 낮추면 되기 때문이다.
1990년 안면도 핵폐기물 영구 보전지역 지정과 백지화로 떠들썩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우리나라 사용 후 핵연료가 1만9000톤 정도 있다고 한다. 사용 후 핵연료도 액체화하여 희석의 마법으로 바다에 버려도 된다는 논리일 것이다. 그리고 묻고 싶다. 총량이 같을 때 희석해서 버렸을 때와 희석하지 않고 버렸을 때 바닷물 전체의 농도가 다르냐고? 아마 삼척동자도 그 진리를 알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방류에 대하여 별다른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오염수가 과학적 기준과 국제적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방류된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8월 24일 대국민담화문). 지난 8월 정부는 10억여 원을 들여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방류가 우리나라에 위험하지 않다는 취지의 유튜브 광고를 내보내고, 9월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10가지 괴담’이라는 책자 7만5000부를 고속전철 좌석에 비치하여 홍보에 앞장섰다. 혹시 찬성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2020년 오염수 방류 계획이 가시화될 때 당시 야당 의원 대부분은 오염수 방류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고 국제소송과 가처분신청을 할 기세였다. 3년이 지나 여당이 된 지금은 회를 먹고, 수조물 마셔가면서 국민에게 안전성을 강변하고 있다. 야당일 때는 위험하고 여당이 되니 안전하다는 허구인지, 양심을 속여가며 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그 어딘가 바라보고 정치를 하는 것인지 심히 혼란스럽다.
정부와 환경단체, 정당을 포함한 특별전담 조직을 가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학적 기준과 국제적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방류하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일본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방류 관련 데이터를 받는 것을 포함하여 직접 핵종 잔류 검사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외교력과 법적 대응을 통해 강력히 제재하여 방류를 막아야 한다.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방류 대응 예산이 2024년 7천380억 원을 시작으로 향후 6년간 3조1437억원이 쓰인다고 한다. 왜 오염수 방류는 일본이 하는데 그 혹독한 대가를 우리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지불해야 하는지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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