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제정됐고 9월 26일부터 시행됐다.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지정된 순간, 35개의 인허가를 받았다고 간주되고 지자체의 인허가 역시 60일 이내 허가 여부에 대한 회신이 없으면 허가한 것으로 간주된다. 주민 의견 수렴 절차는 지자체가 아니라 한국전력이 진행할 수 있다.(한전은 수십억 단위의 돈을 주며 용역업체에게 ‘입지선정위원회 구성·운영 및 경과지 선정’ 업무를 맡기고 있다.)
시행으로부터 일주일도 안 된 2025년 10월 1일 국무총리 주재 하에 제1차 전력망위원회가 열렸고, 거기에서 70개의 송전선로와 29개의 변전소 신규 건설이 결정되었다. 송전선로 길이는 총 3855km. 500m당 송전탑 1개가 들어서니, 약 57m(아파트 20층 높이)의 철탑 7000~8000개가 들어서는 셈이다. 홍성을 지나는 구간도 위 99개 사업 중 일부에 해당한다.
불과 얼마 전인 5월 19일에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개정안이 해당 상임위를 통과했다. 주요 내용은 전력망 건설에서의 민간 자본 도입. 부채가 200조에 달하는 한전의 힘만으로는 속도를 빨리 낼 수 없으니 민간 자본까지 들이는 것이다.
변전소가 점이고 송전선로가 선이다. 그 도달점에는 결국 용인에 예정된 반도체 산업단지가 있다. 기술패권시대, 국가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AI강국, 반도체강국으로 하루빨리 가야 할 필요가 있으니, 그 밑바탕이 되는 전력망 역시 빠르게 지어져야 한다. ‘국민주권정부’라고 ‘지산지소’, ‘지역균형발전’이 대원칙이라고 아무리 말로 떠들어봤자, 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그 실제적인 행동들은 결국 ‘속도’를 말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송전선로가 지나는 구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속도를 저해하는 걸림돌에 불과하다.
신해남~신장성 구간이 지나는 전남 영암군은 최적경과대역이 이미 확정되었다. 호남 송전선로의 시작점이다보니 가장 빠르게 결정된 듯 하다. 2024년 12월 5일에 시작되어 2025년 12월 4일, 1년 만에 확정된 것이다. 9개 읍면 중, 4개의 읍면이 지난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입지선정위원회, 주민설명회 등의 절차는 요식행위로서 진행되었다.(아래 내용은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영암군 대책위 권혁주 집행위원장과의 인터뷰 내용에서 따온 것이다.)
지역주민들이 송전탑 건설 소식을 알게 된 것은 2025년 9월, 이미 3차 입지선정위원회까지 끝난 후이다. 그것도 한전 직원과 금정면 입지선정위원 사이의 대화가 카페에서 흘러나가면서 알게 되었다. 입지선정위원은 한전이 지자체에 요구하고 지자체에서 한전에 추천하면 끝이라고 한다.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러니 그냥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이거, 하세요’ 물어보면 그냥 입지선정위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전은 입지선정위원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한다. ‘주민의 대표’라는 말만 있지 실상은 없는 것이다.
입지선정위원회 자체의 한계도 명확하다. 말이 ‘선정’이지, 이미 송전선로가 지나는 건 확정인데 ‘어디로 갈까요?’ 묻는 식이다. 비공개가 기본으로 선정위원이 아닌 사람들은 회의에 참관할 수 없다. 또한 지자체에 주어지는 보상금 20억(송전선로 1km당)도 입지선정 절차가 1년 이상 늘어지면 액수가 깎인다. 이는 지역 주민들을 갈라치는 전략으로 쓰인다.
반도체는 ‘물 먹는 하마’, ‘전기 먹는 하마’다. 용인에 예정된 반도체 산업단지는 2곳, SK하이닉스의 일반산업단지와 삼성전자의 국가산업단지로, 각각 4개, 6개의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기로 되어있다. 원전 16기 분량인 16GW의 전력이 필요하고, 들어가는 하루 용수는 133만7000t이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코스피 8000선 돌파에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같이 자부심을 느껴야 할까? ‘너네가 송전탑 밑에 살아봐라’는 말은 시골 사람들의 무식한 소리가 아니다. 왜 혜택은 특정 지역과 기업이 가져가고, 그 비용은 사회적으로 부담되고, 피해는 지역주민들이 떠안아야 하는가? 국가가 발전하면 다 좋은 거 아니냐는 말은 그만하자. 법적인 절차만 따르고 돈으로 보상만 하면 끝인가? 왜 우리 생활을 결정하는 데 우리가 참여하지 못하는가?
2024년 7월 정부는 반도체 산단에 필요한 용수를 조달하기 위해 강원도 양구군에 수입천댐 건설을 발표했다. 한강 상류의 다목적댐 3곳(소양강댐, 충주댐, 횡성댐)에서 끌어올 수 있는 여유분은 79만6000t으로, 54만1000t의 용수가 추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반대에 밀려 그해 10월 정부는 건설을 보류했지만 아직 댐건설 계획 자체를 취소하지는 않았다.
양구군엔 이미 3개의 댐이 있다. 1943년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한 전력 공급 목적으로 화천댐을 건설했다. 양구 북면이 수몰됐다. 1973년 수도권 용수 공급 목적으로 소양강댐이 건설되어 양구읍과 남면 일부가 소양호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때 양구는 쾌속선을 타고 들어가야하는 육지 속의 섬이 됐다. 1988년에는 ‘북한이 금강산댐을 짓고 터트려 서울을 수몰시킨다’는 흑색선전 속에 평화의 댐이 건설되었다. 방산면 천미리 일부가 수몰됐고, 주변 마을엔 늘상 안개가 낀다.
결국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지역이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순서가 나중일 뿐이다. 당장 우리 마을에 송전탑이 깔리지 않고 수몰되지 않고 쓰레기가 밀려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니다. 개발을 위해 ‘속도전’으로 달려가는 흐름은 변한 게 없다.
지역의 양분을 쪽쪽 빨아먹는 하마의 덩치는 어디까지 커질까. 일제 시기 철도가 깔리듯 송전선이 깔리고 도달점은 수도권이다. 역대급 초과이익을 둘러싼 삼성전자 노사의 갈등과 용인 부동산 가격의 급등이, 내게는 한 조각 땅 위에 세운 사다리에서 하마가 춤추는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인다. 더 이상 빨아먹을 땅이 남아있지 않을 때는 어쩔 것인가? 그때에도 어디선가 돌고 있을 모터의 굉음과 웅웅거리는 전자파가 자기 몸에만 닿지 않으면 그만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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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우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5년 3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제정됐고 9월 26일부터 시행됐다.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지정된 순간, 35개의 인허가를 받았다고 간주되고 지자체의 인허가 역시 60일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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