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 소소당당] 변화를 위한 서평단

노벨평화상이 묻는 핵발전의 의미, 이동호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역사적 상처에 직면’한 것을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로 밝혔다. 우리는 이제 세계적 작품을 원서로 읽는 국민이 됐다. 한강 작가 뉴스가 연일 팡파르 터지듯 나왔다. 그 밑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단신 뉴스로 발표됐다. 올해 평화상 수상자는 일본 원폭 생존자들이 만든 반핵 운동단체(니혼 히단쿄: 일본 원폭피해자단체 협의회)다. 이 단체는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피해자 중심으로 1956년 결성됐다. 이후 70여 년간 꾸준히 핵무기 반대 시민운동을 해왔다. 

노벨 위원회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고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돼선 안 된다는 것을 증언을 통해 입증한 공로’라고 선정 이유를 말했다. 이어 위원회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금기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인류 역사의 시점에서 핵무기가 무엇인지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핵무기는 세계가 본 적 없는 가장 파괴적인 무기”라고 말했다. 

 

1945년 단 두 발의 원폭으로 사망자만 24만여 명, 피폭자가 15만여 명이 발생했다. 홍성 같은 도시 4개가 피해를 본 규모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상당 기간 원폭 피해를 정확히 조사하지 않았다. 방사능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민들은 피해 현장 복구를 위해, 유가족은 가족을 찾아 현장에 갔다. 그리고 그대로 피폭됐다.

피폭자에게 흔한 증상 하나는 ‘부라부라 병’이었다. 우리말로 하면 ‘빈둥빈둥 병’이다. 나른하고 노곤한 상태가 지속된다. 당시 의학은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 눈엔 피폭자의 모습이 그저 꾀병처럼 보였고, 눈에 보인 그대로 빈둥빈둥병이라 이름 지어졌다. 부라부라병이 잔류방사선에 의한 ‘질병’이었다는 것은 30년이 지나 확인됐다. 자신이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패전이 짙어질 때 일본에 투쟁할 힘이 없다는 상황을 미국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히로시마라는 곳을 선택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원폭이 투하돼서 사람이 어떻게 죽는가, 방사선이 어떤 형태로 사람을 죽이는가에 대해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일본인을 이용해 실험을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히로시마에 한 번도 공습하지 않았던 이유는 원폭을 투하했을 때의 위력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93쪽)

게다가 방사능 영향이 대를 이어 나타난다거나 평생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국가는 말하지 않았다. 진실이 밝혀진다면 일본의 종주국이었던 미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침묵을 선택했다. 나아가 ‘힘의 도구’로서의 핵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선 안 됐다. 그랬던 일본에 핵발전소 사고가 2011년 일어난 것은 아이러니였다. 핵발전소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주장해 왔다. 

일본 반핵단체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절묘한 시점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일본에서 후쿠시마 핵사고에 대한 국가적 외면은 다시 반복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0월 17일 10차 방사성오염수 방류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8만 톤을 투기했고, 아직 130만 톤이 남았다.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국가가, 마치 분노를 난사하듯 세계를 향해 방사성 물질을 보내고 있다. 바다에 버리는 이유는 하나, 땅에 묻는 건 너무 비싸서다. 상식으로 생각해 봐도 이상한 논리다. 당사자인 일본 국민의 무관심은 더 이상하다. 그런 중에 읽은 책 《생명을 살리는 반핵》에는 그 힌트가 담겨있다. 책의 저자는 피폭 피해자인 히다 슌타로다. 원폭이 떨어지던 당시 히로시마 육군병원에 군의관으로 있었다. 사고 이후 의사로서 수많은 피폭자를 만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반핵 운동을 하고 있다.

“피폭 피해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미국정부도 일본정부도 인정하지 않았다. 원폭피해를 축소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축소 의도는 원폭피해만이 아니라, 원전피해에 대해서도 공통적이다. 핵분열에너지가 무기이건, 혹은 ‘끓는 물 장치(핵발전소)’이건 인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싶어 하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들의 지배력을 줄어들지 않았다.”(14쪽)

침략과 약탈을 전제하는 일본 ‘제국주의’가 문제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핵무기를 맞아도 쌌다는 논리는 또 다른 제국주의를 허용하는 실수다. 이를 직면하고 반성하지 못한다면, 몇 사람의 결정으로 인류 안위가 결정되는 지배구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말한 비용 문제가 세계적 침묵의 단서였다. 대부분의 강대국이 핵발전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핵폐기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인류는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 가능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이들이 바라보는 곳은 바다가 아닐까. 이게 침묵하고 있는 이유 아닐까. 우리는 핵에너지와 상존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 《생명을 살리는 반핵》은 지금 우리가 외면한 문제를 묻는다.

 

https://www.hj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873

 

노벨평화상이 묻는 핵발전의 의미 - 홍주일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역사적 상처에 직면’한 것을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로 밝혔다. 우리는 이제 세계적 작품을 원서로 읽는 국민이 됐다. 한강 작가 뉴스가 연일 팡파르

www.hjn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