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반대 주민 릴레이 기고 14. 송전탑 반대를 넘어 민주주의로!/ 신은미/ 2026.08.18

“홍성으로 고압 송전탑이 지나간다는데 알고 계세요?” “동네에 현수막 붙은 거 보고 알았지. 송전탑 근처 살면 안 좋다고는 하는데, 우리도 전기 쓰니까 필요한 거 아닌가?” “근데 그 송전탑으로 지나가는 전기는 우리가 쓰는 게 아니라 용인에 있는 대기업에서 쓰는 거래요.” “대기업이 잘 돼야 우리나라가 발전하니까” “몇몇 대기업 잘 되자고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되지 않을까요?” “꼭 필요하면 누군가는 희생을 할 수도 있지. 죽는 것도 아닌데.” “꼭 필요하지도 않고 다른 방법이 있는데, 국가가 밀어붙이는 거면요?” “그래도 국가가 정한 일인데 막을 수 있나. 나라에서 어련히 계획을 세웠을라고.” “···”
송전탑 문제를 안내하려고 주민들을 만나보면 이런 대화가 태반이다. 대기업은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처럼 되어버렸고, 국가에서 결정한 일은 국민이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자 실체라는 사실을 잊은 사회. 짤막한 대화 속에서 우리 시대가 당면한 ‘진짜 문제’를 마주한다. 어쩌면 전자파와 소음, 재산가치 하락, 경관 훼손 등 초고압 송전선로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보다 더 위험하고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초고압 송전선로 백지화와 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 요구는 단순한 송전탑 반대가 아니다. ‘송전선로가 필요하며-송전탑을 어디에 세울지 빨리 결정해야 하고-어차피 진행될 사업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폭력적인 논리에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행위다.
실제로 한국전력이 주최한 홍성지역 설명회에서는 “송전탑이 문제가 많아 보인다. 주민들이 반대하면 송전탑이 안 세워질 수 있나”라는 주민의 질문에, 한전 관계자는 “국가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가도 한다”고 발언했다.
밀양 주민들이 765kV 송전탑에 반대하며 10년 넘게 싸웠지만(실제로 송전탑에 반대해 두 분이 자살하고, 수많은 주민이 고통을 당했다.) 결국은 송전탑이 세워지지 않았냐는, 비아냥에 가까운 답이었다. 밀양 주민들의 노력으로 그 이후 765kV 송전탑은 세울 수 없게 되었고, 송주법(송·변전소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었으며 형식적이나마 송전선로 계획에 주민들이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얘기하지 않는다. 송전탑이라는 거대한 이슈에서 주민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패배감은 결국 국가폭력 그리고 민주주의와 관련돼 있다.
전기가 어디에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더욱 가관이다. 정부는 용인반도체국가산단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2038년까지 신규 송전선로 99개 노선, 송전선로 길이 총 3,855km, 345kV 송전탑 수천 개를 설치하는 송전망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 있는 345kV 송전선로의 2배 수준. 이것 자체가 이미 무리하고 비현실적인 계획이다. 시작(발전소)과 끝(용인반도체산단)만 있고 그 중간에 있는 지역은 송전탑과 송전선로, 변전소가 있는 경유지일 뿐이다. 아무리 태양과 바람으로 생산한 재생에너지라고 해도, 이렇게 장거리 송전으로 효율이 낮고 위험부담이 높으며 주민에게 피해를 준다면 ‘정의로운 에너지’는 아니다.
환경수업시간에 송전선로 문제를 소개하면, 처음 이 문제를 접한 청소년들도 “기업이 에너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잃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전기세를 비싸게 물리면 어떨까요?”라는 상식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업단지 승인은 통상 4년 이상 걸리는데, 용인반도체산업단지는 1년 9개월 만에 승인됐다. 특히 14개 송전선로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되었다. 반도체산업에 필수적인 막대한 양의 용수와 원전 10기(10GW) 분량의 전기 공급 계획도 없이 말이다.
송전선로 건설에는 세금 70조원이 투입된다. 국민세금이 특정 기업의 전기 공급을 위한 일에 쓰여도 되는가. 그렇다면 반도체산업의 이익은 온 국민들에게 고루 혜택으로 돌아가는가. 그런 면에서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국민을 우롱하는 무례한 사업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러한 사실을 묵과한다면,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공범자가 된다.
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와 송전탑 백지화를 요구하는 행진이 진행 중이다. 7월 30일 해남에서 시작된 행진은 전남·광주, 전북, 대전, 충남, 충북 등 초고압 송전선로 설치 예정 지역을 거쳐 8월 20일 청와대로 간다. 홍성에서도 지난 11일 주민 100여 명이 모여 행진하며, 송전탑 반대를 넘어 민주주의로의 여정에 합류했다.
전기를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의 불일치와 불평등에 대해, 소수 대기업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온갖 특혜가 주어지는 것에 대해, 반도체가 온 나라, 온 국민을 먹여 살릴 것처럼 호도하는 현실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반영하지도 않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국가가 정한 거라면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에 대해, 무엇보다도, 약하고 가난하고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희생되어 왔고 지금도 희생되고 있는 부당함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는 여정 말이다.
송전탑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송전탑 반대 운동에 헌신해온 밀양 할매들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한다. 아울러 남기신 말씀을 가슴에 품고 한걸음 한걸음 민주주의로 다가가길 소망한다.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하여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다른 싸움의 현장에 가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과 연대를 하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라가 하는 일’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다. ‘나라가 하는 일’이 실제로는 전혀 옳지 않은 일일 수 있고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를 거부하고 비판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생각이 마음 안에 싹트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여러 지역에서 ‘잘못된 나라의 일’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그들의 처지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하면서, 그리고 ‘이번에 이 일을 묵과하면 죽을 때까지, 아니 내가 죽은 후에도 내 자손들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되리라’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나라가 하는 일’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반대할 힘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불어넣어 준 용기, 그리고 발로 뛰는 공부와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새롭게 배운 지식이 만들어 낸 힘이었다.” (책 『전기, 밀양-서울』 67-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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