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찾아가는 일: 채식, 김혜진
갓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채식주의자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식사 중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만두도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맛있는 만두를 먹을 수 없다니, 큰 충격을 받은 그때가 바로 ‘채식’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받아들인 순간이다. 이후로 시대가 많이 변했다. 채식주의는 이젠 낯선 개념은 아니다. 해산물과 우유만 섭취한다는 ‘페스코’에서 동물성을 완전 배제하는 ‘비건’까지 단계별 채식의 단계도 많이 알려져 있다. 나 또한 최근 약 3년간 직접 해먹을 때는 비건식으로 먹고 있다. 물론 매일 완벽한 채식은 실패한다. <불완전 채식주의자>에서 저자 또한 그렇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채식을 하기에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그런 편이다. 길을 걷다 주변 식당을 둘러보라.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거의 없다. 먹방을 장려하듯, 티비와 유튜브에선 먹거리에 대한 성찰보다는 얼마나 맛있게, 많이 먹을 수 있는지 경쟁하듯 보여준다. 우선순위의 꼭대기에 쾌락이 있다. 먹는 것이 우리 몸을 구성한다는 명제는 맛의 쾌락 앞에서 더 이상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이 와중에 채식을 고집하는 이들은 과연 답답하고 꽉 막힌, 편협한 인간들일까, 아니면 동물을 너무 사랑해서 동물만 보면 절절매는 어쩔 수 없는 박애주의자들인걸까?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채식을 고집하는 각자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 많은 이들이 꼽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장식 대량 축산의 가려진 진실에 관한 것이다. 이 진실을 알지 못하고 우리는 마치 매트릭스처럼, 보기 좋은 가짜 진실만 믿고 사는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 진실의 현장은 다음과 같다.
정진아 저/ 허밍버드/ 1만 4500원
냉장고 문을 열려고 하는 인간을 상상해보자. 우리의 냉장고 뒤로 소, 돼지, 닭들이 몇천, 몇억 마리가 줄을 지어 서 있다. 우리는 고기가 얼마나 필요하든 고기가 부족할 걱정이 필요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손님 초대를 하거나 큰 잔치를 열 때, 마트에 가면 얼마든지 필요한 만큼 고기를 얻을 수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새삼 신기하지 않은가.
몽골의 유목민이나, 혹은 농업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보자. 가축은 인간에게 귀한 존재였다. 고기는 그들이 주는 최후의 선물로, 가장 필요하고 귀한 날 가족 같은 가축을 잡는다. 사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을 취하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동물과 하늘에, 자연에 감사하며 인간 또한 그들 중 하나임을 늘 기억했다. 사는 모습이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대-놓고 고기를, 생명을 취하는 것은 과연 인간 자신과 지구에 이로울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자유롭게 밖을 거닐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진실을 감추는 깜깜한 벽에 가려진 채, 다량의 항생제, 호르몬제 등을 맞고, 좁은 곳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 정신은 멀쩡할까? 영국에서는 돼지우리에 장난감을 넣어줘야 한다는 법이 있다고 한다. 너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삶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대판 노예다. 오직 살육을 위해서 대량으로 길러지는 노예들이다. 흑인에 이어 인류 역사에서 노예의 계보를 잇고 있는 것이다. 대량축산이 기후위기에 끼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또한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다만 소, 돼지, 닭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의 풍요로운 냉장고는 어디에서 온 걸까. 알고 보면 여러 측면에서 사실 그리 ‘건강하지 않은’ 고기에 대한 고민은 이제 인류가 함께 논의해봐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생선은, 빵은, 식물은 불쌍하지 않냐는 질문, 지적, 비아냥을 들을 수 있다.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가 요구되며, 다름이 용납되기 어려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 또한 사회적으로 소수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이들은 그저 누구든 자기의 생을 충만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매일 완벽하지 않더라도 고민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선택하는 일은 매일 멈출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점심 메뉴로 고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 거대한 시스템의 비윤리와 착취구조를 바로잡는 것 또한 중요하다. 매트릭스를 찢고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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