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녹색당 논평, 칼럼

당원 릴레이 기고 16) 제주 바다에서 아들이 던진 물음, 손현석

인어 2024. 9. 16. 14:19

여름휴가를 제주에서 보내고 왔어요. 약간은 탁한 물색과 넓은 갯벌로 익숙한 서쪽 바다를 주로 보다가 현무암에 물든 검푸른 바다와 산호가 뱉어낸 듯한 에메랄드빛 해수욕장을 만나자니 절로 소리를 지르며 아이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어요. 찌는 듯한 더위에 비지땀이 쏟아지는 몸을 시원한 바닷물에 담근 채 숨을 편히 쉬며 주변을 살펴보니 물가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 얕은 바다에서 스노클링하는 사람들, 파도가 좋은 곳에서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저마다 자유롭고 평화롭게 놀고 있었어요.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번지는 순간 막내가 조심스레 묻더군요. “아빠, 바다에서 놀아도 괜찮아? 핵 오염수 아직 안 온 거지?” 생각도 못 한 갑작스러운 물음에 애써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엉, 그래. 아직 안 왔을 거야. 배고픈데 우리 나가서 뭐 좀 먹고 놀까?”

일본이 자국민은 물론 국제 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으로 핵 오염수 방류를 예고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과 충격 속에 휩싸였어요. 그런 분위기가 시간이 지나 바뀌더니 유사 이래 일본과 동맹을 말할 정도로 가장 친일하는 정부는 국민 생명과 안전은 뒷전인 채 후쿠시마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일본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어요. 더 나아가 수억 원을 들여 오염수 안전 홍보 영상을 만들고 후쿠시마 괴담집을 배포하고 바나나, 커피보다 안전하다고 하질 않나 심지어 수조물을 직접 퍼마시는 사람도 있었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본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바탕으로 일본 편을 들며 자국민과 싸우는 노력이 통한 건지 이제 사람들은 방사능 안전 불감증에 빠지고 말았어요. 23년 8월, 믿을 수 없는 핵 오염수 1차 방류 때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이 반대했는데 8차 방류를 지켜보는 지금 우리는 무관심을 넘어 자포자기하는 무력감에 빠져드는 것 같아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몇 가지 문제점을 분명히 짚어야 합니다. 먼저 일본은 앞으로 30년 동안 방류를 계속하고 2051년 후쿠시마 원전 폐로를 마치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염수가 매일 140톤씩 추가되는 현재 후쿠시마 원자로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880톤 이상 핵연료가 노출되어 방사능을 계속 내뿜고 있으며 사고 10년 만에 로봇이 겨우 경미한 내부 현장 사진 정도 찍었을 뿐 방사선량이 센 곳은 아직도 접근도 못 하고 있어요.

1979년 후쿠시마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가벼운 사고가 났던 미국 스리마일 원전은 다행히 노심 제거 후 운영을 멈추고 사고 수습 후 폐로까지 60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보다 심각한 후쿠시마 원전 폐로 기간을 30년으로 잡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 거짓말인가요.

둘째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말할 때 알프스를 통과하면 오염수 속 방사성 물질이 안전 기준치 이하로 걸러지고 삼중수소도 바닷물로 희석하여 기준치 이하로 내린다고 하는데 여기서 기준치는 그야말로 최소한 안전 기준이지 전혀 문제가 없다는 근거는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안전한 방사선량은 없기 때문에 방사선량은 기준치 이하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이 1977년 제정한 알랄라(ALARA) 원칙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검증한 것도 일본이 준 데이터만으로 일본이 위임한 사항을 확인한 것에 불과할 뿐 알프스가 걸러낸다는 방사성 핵종은 200여 종에서 불과 62종이고 알프스 처리 후에도 70%의 방사능 물질이 기준치를 뛰어넘어 검출되고 있습니다. 똥물도 윗물만 뜨면 숨을 쉴만하다는데 오염수 검사 시료 채취 때 가라앉은 오염수를 섞지 않고 윗물만 검사한 것은 염라대왕도 손사래를 칠 만한 놀라운 꼼수인 것이죠.

셋째로 오염수 방류는 일본 정부 무책임과 인접국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한국 정부 방조가 낳은 합작품을 뛰어넘어 철저한 자국 이기주의로 움직이는 패권 국가의 검은 속셈들이 엉켜 빚어냈다는 사실입니다.

올해 일본은 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핵무기를 만들 수도 있는 롯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 시설 완공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핵을 보유하여 군사 대국으로 나아가려는 일본의 야욕과 이러한 일본을 이용하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노림수가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의 묵인, 방조와 협조하에 일본 원전 세력의 이익과 군사력 증강이라는 목표 앞에 롯카쇼무라 완공은 일본이 플루토늄을 얻어 핵탄두를 만들 수 있고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다는 말입니다.

일본과 미국은 인류 안전과 평화보다 경제성과 군사력을 중시하며 자국 이익만을 추구하는데 한가롭게 한미일군사동맹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미일의 앞잡이로 놀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중국과 달리 후쿠시마 8개현 수산물 수입만을 막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 금지마저도 WTO 패소 위기에 처해 있고 선박 평행수, 일본 활어차, 샘플만 조사하는 형식적 방사능 검사, 후쿠시마산 수산물 가공품 수입 허용 등 생활 속 방사능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어요.

오염수 방류라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만행을 두고 일본은 당장 2051년 폐로를 장담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조건 이번 세기를 넘기거나 몇 백 년 이상도 걸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류 최초 사고의 앞날을 누구도 예견하지 못하는 가운데 해가 갈수록 지구 환경은 방사능 피폭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고 이 문제는 당장 제주도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저녁에 회를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단순한 선택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가 공멸하는 길에 들어서 있다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국책기관들이 만든 보고서는 ‘국제 협력 및 사법적 대응’을 가장 중요한 대응으로 제시하는데 오염수를 방류한 일본이 국제조약을 위반했음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현재 가장 즉각적이고 강한 조치는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일본을 제소하여 재판이 끝날 때까지 오염수 방류를 중단시켜 달라는 잠정조치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재판소는 한 달 이내로 결과를 통보하는데 잠정 조치가 승인되면 당장 방류를 중지시킬 수 있습니다. 태평양 연안 국가를 비롯해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여러 국가, 국제기구, 시민 단체와 협력하여 소송을 압박하고 전선을 확대한다면 핵 오염수 해양 방류라는 초유의 사태에 전 세계가 연대하여 대응하는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정부에게만 있다는 사실이고 이 절벽같은 사실 앞에서 지금까지 주절주절 얘기한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절망과 분노를 느낍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덧붙임 : 딴지일보 ‘한 방에 이해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기사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http://www.h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201

 

제주 바다에서 아들이 던진 물음

여름휴가를 제주에서 보내고 왔어요. 약간은 탁한 물색과 넓은 갯벌로 익숙한 서쪽 바다를 주로 보다가 현무암에 물든 검푸른 바다와 산호가 뱉어낸 듯한 에메랄드빛 해수욕장을 만나자니 절로

www.h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