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소소당당] 변화를 위한 서평단

비정상을 말하기-《이것도 제 삶입니다》를 읽고, 김혜진

인어 2024. 8. 15. 10:25

 

이 책은 이름마저 생소한 ‘섭식장애’라는 질병과의 15년간의 분투기이다. 현재 30대인 지은이 박채영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뿐, 학교에 다니지 않아 학력도, 별다른 자격증도 없다. 섭식장애를 다룬 다큐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의 주인공이자 책의 저자로서 ‘섭식장애’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섭식장애는 거식증과 폭식증이 반복되며 소화기관과 몸의 여러 기능이 망가지고 심할 경우 생존도 위험해질 수 있는 질병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지만 이 책은 그 증상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묘사하지는 않는다. 대신 ‘증상은 한 인간이 가진 고통의 표현’이란 작가의 말처럼 그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설명하기 위해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여성이자 노동운동가로 살며 충분한 보살핌을 주지 못한 엄마 상옥의 이야기, 그로 인한 어린 시절의 상처, 이것이 기원한 자리를 찾다 발견한 엄마와 외할머니 등 자신을 키운 여성들이 가부장제와 독재 하의 한국 근대를 살아낸 삶, 그럼에도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가는 어엿한 나 박채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수많은 여성들과의 관계. 한국에서 처음으로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진행했던 저자는 질병이 개인적, 사회적 요인의 교차 속에서 발생함을 자기 삶과 책을 관통하며 말하고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특히 젊고 아픈 여성 당사자들의 자기서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아픈 몸에 관한 이야기, 장애가 있는 몸에 관한 이야기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여전히 계속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난 모든 사람이 아프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유년기가 있고 그 시기의 좌절, 상실, 사랑, 결핍이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형성할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육아도, 완벽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중략) 모든 인간은 각자의 삶에서 비롯된 상처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중이라는 점에서 같다.’(98쪽)

군대 생활을 힘들게 해서 그만 무뚝뚝해져 버린 사람을 안다. 학창 시절, 성적이 나쁘다고 늘 관심받지 못했다는 사람을 안다. 사랑받지 못해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을 안다. 그럼에도 살아가듯, 아픈 몸으로도 사람은 살아간다. 하지만 질병이나 장애가 있다면 쉽게 그 삶은 비정상으로 구분된다. 저자는 섭식장애와 함께한 지 15년이 넘은 지금도 알콜 의존증과 우울, 불면증이 있고 이제는 없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 한다. 폭식증도 종종 나타난다. 누군가 “그게 사는 거니?”라고 한다면 그는 대답한다. “이것도 제 삶입니다”라고. 일상적으로 폭식과 구토를 하며 어떻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저자는 또한 당신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아픈 몸은 신호다. 나의 기분과 감정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을 때 몸은 통증 혹은 불편감으로 알려준다. 머리가 포착하지 못한 감정과 기억이 몸에는 전부 남아있는 것이다. 아픈 몸의 이야기들은 이를 잘 듣고 해독하고, 그런 몸이 되게 한 사회 구조의 문제를 포착하게 해준다. 남들은 비정상적인 삶, 빨리 청산해야 하는 생활로 치부하는 질병 이력을 자신의 경력으로 삼아 책과 영화로 오롯이 들려주는 박채영의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수많은 ‘비정상’의 삶들이 이야기되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탈학교 청소년이자 섭식장애 당사자로서 질병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관심을 세상으로 돌렸다. 자신의 소수자성을 바탕으로 탄압받는 사람들의 곁에서, 집회 현장에서 자유를 느꼈고 자신의 감각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 질병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섭식장애로 잃은 것보다 이를 살아내며 겪어낸 일들의 가치가 더 크다는 그의 일상 속엔 여전히 질병이 존재한다. ‘그냥, 이런 게 삶이 아닐까?’라는 그의 말은 범부에게 위로를 준다. ‘이런 나라도, 어떤 삶이라도 가치가 있다’고. 허울뿐인 정상성의 규범에서 벗어나 모두가 자신의 비정상성을 말하는 축제 같은 사회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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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을 말하기-《이것도 제 삶입니다》를 읽고 - 홍주일보

이 책은 이름마저 생소한 ‘섭식장애’라는 질병과의 15년간의 분투기이다. 현재 30대인 지은이 박채영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뿐, 학교에 다니지 않아 학력도, 별다른 자격증도 없다. 섭식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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