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녹색당 논평, 칼럼

당원 릴레이 기고 10) 바다와 인간, 이예이

인어 2024. 1. 30. 11:22
바다와 인간

 

1월 1일, 새해를 맞아 바다에 갔다. 계절마다 한두 번씩은 찾아오는 태안의 익숙한 해변이었다. 신년이라 그런지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파가 몰렸다. 한산한 겨울바다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래도 좋았다. 간밤에 쏘아 올린 폭죽 잔해들 하며 일회용 커피잔, 맥주캔들이 곳곳에 굴려 다녔어도 그래도 좋았다. 갈매기가 울고 바닷바람에 귀가 시렸다. 파도가 모래에 닿아 부서졌다. 밀려온 해초가 여기저기 널브러진 해변을 따라 걸으며 앞서 걷는 이의 발자국이 모래에 찍히는 걸 봤다. 또 파도에 지워지는 것을 봤다. 이곳 서해안까지 오염수가 닿는 데 얼마나 걸릴까. 벌써 2만 3000여 톤의 오염수가 바다에 버려졌다.

 

같은 1월 1일, 일본 이시카와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규모 7.6도의 강진이었다. 인근의 원전 두 곳에서 작지만 사고가 났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동이 중지된 원전들로, 핵 연료봉을 식히던 냉각수조가 넘치는 등의 사고였다고 전해진다. 경미하다고는 하나 아찔한 장면이다. 이렇게 주먹구구로 원전은 가동되고 있다. 핵발전소를 해안가에 설치하는 이유는 원전을 가동하기 위해 바닷물만큼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진의 피해를 직격타로 맞는 해안가에 원전을 짓는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지구의 운명을 행운에 맡긴 것과 다름없다.

 

이보다 더 대담하고 놀라운 점은 원전은 폐기물 처리에 있어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탈핵을 하지 않는 한 오염수 방류와 같은 핵폐기물 문제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가장 안전하다는 방법이 땅속 깊이 10만 년 동안 묻는다는 건데, 처리 방법이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마저도 부지 확보가 어렵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는 일단은 폐기물을 임시 저장하는 것으로 원전을 운영해왔다. 2022년 기준, 그 임시저장소마저 98%가 찼다. 정말로 더 이상의 핵폐기물이 발생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는 오염수 해양투기와 친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공포심을 조장하는 괴담 정도로 매도한다. 소금값을 급등시키고 어촌을 힘들게 하는 주범이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그 잘못을 떠넘기고 있다. 지난여름은 소금과 건어물 등의 사재기 열풍이 불었다. 오염수 위기를 마케팅으로 소비하는 광고사들의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나 역시 텅 비어가는 마트의 매대를 지나치지 못했다. 소금을 사며 불안을 달랬다.

 

핵 전문가들은 오염수와 원전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괴담에 선동되지 말고 팩트에 주목하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시민들의 '팩트'는 소통 불능의 핵산업과 한국 그리고 일본 정부를 향한 분노로 경험된다. 어민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알면서도, 이기심의 발로인지 알면서도, 해결책이 아닌 줄 알면서도, 당장 몇 봉지의 소금이라도 사두려는 불안감이 팩트다.

 

일본 정부의 오염수 해양투기는 진보의 성취라 믿었던 현 문명이 우리의 목을 조르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이 모든 생활의 편리는 핵을 쪼개는 기술만큼이나 경이롭다. 동시에 치명적이다. 밤을 밝히고 하늘을 난다. 강을 깎고 산을 뚫는다. 흙은 콘크리트로, 바다는 흙으로 메꾼다. 인간은 지구와 유리된 공간인 '문명사회'에 산다. 마치 인간은 지구의 영향권에서 특별히 제외라도 된 듯이 산다.

 

그러나 이 최첨단의 세계도 핵오염수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바다가 없으면 인간도 끝장이라는 걸, 우리가 사는 곳은 가상의 외딴섬이 아니라 유기체인 지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반드시 탈핵해야 한다. 기후변화를 늦춰야 한다. 그러나 이 편리하고 익숙한 세상, 이 뿌리 깊은 석유문명 그리고 원자력 문명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할까?

 

돌아오는 4월은 제22대 총선거가 실시된다. 핵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허술한 과학 공방에 주의를 빼앗기지 말자. 우리의 불안에 공감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자. 탈핵 사회를 열어나갈 수 있는 정당에 표를 주자.

 

17세기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는 생각을 바다에 비유했다. '영원히 항해하는 마음'으로 '생각이라는 기이한 바다'를 헤칠 것이라 썼다. 해안가는 인류에게 생존의 터전이었던 동시에 휴식과 사유의 공간이기도 했다. 바다는 존재 자체로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시켜준다. 핵 전문가들이 '이성적 사고' 운운하며 시민을 무시할 때 우리는 더욱 '감상적 인간'이 되어 바다로 나가자. 바다에 버려진 폭죽 잔해들과 종이컵을 줍자.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보자. 쓰레기통 취급을 받고 있는 바다의 위엄을 되찾자. 바다를 원전과 핵폐기물로부터 지키자. 탈핵이 곧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다.

 

 

바다와 인간 - 홍성신문 내포타임즈

1월 1일, 새해를 맞아 바다에 갔다. 계절마다 한두 번씩은 찾아오는 태안의 익숙한 해변이었다. 신년이라 그런지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파가 몰렸다. 한산한 겨울바다를 생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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